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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

합리화

by 정수윤세

늘 비슷한 하루를 살고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면서 그럼에도 숨 쉬며 살아가는 이유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녀, 누군가는 배우자, 누군가는 반려동물, 누군가는 부모님, 누군가는 친구,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 그도 아니라면 또 누군가는 돈, 누군가는 명예처럼 저마다의 목적을 두고 의지하는 대상은 모두가 다르다.


그렇다면 현재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는데 당연하게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테고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꼭 재벌이어서도 아닐 것이며, 꼭 성공한 사회적 위치에 포진해 있지 않아도 말이다.

인간의 본성은 마치 음주측정기 빨대처럼 끝을 모른다. 보통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눈으로 보고 배움으로 인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믿게 되었고 자신의 호흡이 닿는데까지 몸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빨대로 숨을 불어 넣는다. 하지만 인생을 자주적으로 살며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불어넣는 숨의 양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다 하니까 따라 하는 사람이기보다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다.


현명한 사람은 독창적이다. 적어도 남들의 눈에 그렇게 보여진다.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이 보통의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선구자가 되어 어떤 분야에서든지 개성을 나타낸다. 패션, 라이프스타일, 취미 등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특화된 사람처럼 보인다. 또한 나보다 일을 열심히 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돈은 어디서 났는지 자주 여행도 다니고 좋은 차도 타고 다니고 특이한 옷과 패션을 주로 하고 다니며 취미도 한 개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엔 마음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임을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일상을 보내면서 특이한 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씌워지는 안경이 있다. 선입견이라는 안경이다. 이 안경은 조금 특별하다. 남들과 같은 안경을 끼고 있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는 가족과도 모두 다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선입견이라는 단어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저 개인이 가진 견해가 안경알로 박혀 있는 특수한 안경이다. 그 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세상은 모두 자신이 가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어 생산직을 다니고 있는 한 사람이 자신이 가진 잠재력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채로 명절에 친척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사촌 동생이 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면 ‘나는 절대 못 하는 일을 저 친구는 했구나 대단하네 박수 쳐줄만 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할까?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릴 때 그렇게 까불거리고 놀더니 어느새 정신 차리고 공부해서 성공했나 보네’라고 생각하면서 자신과는 먼 이야기로만 느낄 것이다. 여기에 짧지만 많은 비밀이 숨어있다. 가족이든 가족이 아니든 중요하지 않다. 직업도, 과거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정신 차리고’라는 대목이 가장 중요하다.


정신을 차린다는 건 현재의 삶이 비정상이라는 말도 아니다. 살면서 꽤 그런 말을 들어본 사람도 많을 것이지만 그 말은 마음의 눈을 뜨라는 말로 대체될 수 있다.

마음의 눈을 뜬다는 의미는 그럼 어떤 의미일까? 사람은 눈을 감고는 시각을 이용할 수 없다. 눈을 감은 채로는 당장 앞에 있는 물건조차 손으로 조심스레 만져가며 구분 지어야만 한다. 그러면 모든 행동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앞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으며 무엇일 줄 알고 손으로 만지고 먹을 수 있는지 말이다. 지금 생산직을 다니면서 변호사가 된 동생을 부러워하고만 있을 시간이 없다. 물론 생산직에 다니면서 지금의 삶에 100% 만족한다면 이미 마음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일테니 필요가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지만 나이 때문에, 체력 때문에, 주변 환경 또는 가정환경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렇게 살고는 싶지만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가 없음을 핑계와 합리화로써 세상에 대변하고 있을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성공의 아이콘으로 칭송받는 직업인 의사, 변호사, 판사, 고위직 공무원 심지어는 대통령도 처음부터 혹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지 않았다. 똑같이 부모님의 사랑 속에 태어난 한 사람이고 어려서부터 부모의 재력을 이어받거나 특출난 재능을 뽐낸 소수의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낸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에는 호통 판사로 유명하신 천종호 판사님은 형제가 6명인데 부모님과 함께 단칸방에 사시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피나는 노력으로 공부해서 판사가 되셨다고 한다.

또한 전 야구선수 이종범 선수도 프로시절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처음부터 승승장구 했다고 생각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집안을 일으키고자 하는 열망이 배트를 잡게 하고 손에 물집이 잡히고 찢어져 피가 나고 굳은살이 배길 때까지 노력한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만 말하면 어린 시절이라서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영국에 조앤 머레이 이름을 가진 사람을 아실지 모르겠는데 J.K 롤링이라고 하면 아시는 분이 있을 것이다. 바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소설 해리포터의 작가이시다. 이분은 어려서 노력해서 되신 분이 아니다. 비교적 빠른 나이에 결혼했다가 이혼을 하시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40대가 넘어서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글로 표현하다 보니 세계적인 걸작이 세상에 탄생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늦게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맞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눈을 뜨는 일이고 정신을 차리는 길이다. 이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위인들이기 때문일까? 물론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는 근거가 없기에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사실은 동일하다. 자신을 가두는 것은 오직 자신의 마음이다. 눈을 뜨고 바라보아야 재능이 어떤 것인지 알아볼 수 있다. 눈을 감고만 있으면 아쉽지만 어떤 것도 가질 수도, 이룰 수도 없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 자연 풍경을 보고 진심으로 예쁘다고 느끼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사람을 보셨을 것이다. 또한 같은 장소에서 이런 데를 왜 오냐며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도 보았을 것이다. 마음의 눈의 차이다. 마음의 눈은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는 하나의 키트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애틋한 감정을 느낄 때처럼 주어진 환경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마음의 눈이다. 밝고 따뜻한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디에 데려다 놔도 어떤 환경에 있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해가 내리쬐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며 산다. 반면 마음의 눈을 감은 사람은 해가 뜨면 덥다고, 비가 오면 축축하다고, 눈이 오면 춥다고 싫어한다. 어떻게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역시나 마음의 눈을 뜰 용기가 없는 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순응하며 사는 삶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는 ‘현저하게 다른 인생을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 관한 이야기다.


마음속에 갖고 있는 눈을 감추지 말고 세상을 바라보시길 바란다.

자연적으로 쓰게 된 안경을 벗어 던지고 자신이 가진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가장 행복한 일들을 하고 오직 한 번 뿐인 인생을 즐기며 살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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