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하는 마음
인생 처음 헌혈의 기억은 고등학교 재학시절로 돌아간다.
정확히 몇 학년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친구들은 수업 시간을 합법적으로(?) 뺄 수 있으며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을 너도나도 부르짖으며 운동장에 있는 헌혈 버스에 가서 줄을 섰다.
참 바보 같다고 생각했음에도 어느새 나도 그 무리 중에 껴서 순서를 기다렸다. 약을 먹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친구들이 헌혈 불가 판정을 받고 나올 때마다 순서가 빠르게 다가왔다. 문진을 하고 네 번째 손가락을 살짝 바늘로 찔러 혈액형 검사를 한다. 혹여 내가 과거에 알고 있던 혈액형이 아니면 어쩌지?라는 이상한 상상도 함께였다. 무사히 혈액형 검사와 문진을 마치고 나면 자리가 날 때까지 대기석에 앉아 기다렸다.
이윽고 침대에 누워 오른팔을 걷어 올린 뒤 팔뚝에 노란 고무줄이 채워졌을 때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사도 익히 맞아봤지만 헌혈이라는 행위 자체는 처음이었기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가끔 쓰러지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게 내가 되면 안 될 텐데 같은 쓸데없는 걱정하는 사이 간호사 선생님은 내 오른팔이 접히는 부분에 알코올솜을 문질러 소독을 한 뒤 조금 아프다며 바늘을 찔러 넣으셨다. 일반적으로 병원에 쓰이는 주삿바늘보다 크고 두꺼워서 두려움이 생겨 눈을 질끈 감았다. 바늘이 꽂히고 나의 피가 헌혈 주머니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첫 헌혈의 경험은 시작과 동시에 끝났다.
보상으로는 이온 음료 한 캔과 초코파이 두 개 헌혈증이 전부였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내 혈관이 크고 맥이 빠른 편이어서 지금도 그렇지만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5분 정도 먼저 시작한 사람이어도 같은 전혈을 하는 사람보다 항상 먼저 끝이 났다. 다른 사람보다 맥이 빠르다는 것은 혹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여기저기서 검사도 받고 이곳저곳에 문의를 해봤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기도 하지만 다른 질병이 있지도 않다는 설명을 여러 차례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항상 헌혈 전 혈압을 잴 때 심호흡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2000년대 후반에 첫 헌혈을 시작해 직접 찾아간 적은 없고 헌혈차가 학교에 왔을 때 늘 헌혈을 했고 군에서도 헌혈차가 오면 항상 헌혈을 했다. 이유라면 정말 단순하게도 시간을 때우는 목적과 동시에 다른 사람보다 피가 빨리 나온다는 이상한 우월감도 있었던 것 같다.
군 전역 후 20대 후반에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의 권유로 헌혈의 집이라는 곳을 처음 찾아가 봤다. 헌혈 데이트 자체가 낯설기도 했으나 직접 헌혈의 집까지 찾아와서 헌혈하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헌혈의 역사까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1950년대~70년대까지 겪었던 역사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다. 전쟁을 겪고 병원에 환자들이 수혈을 받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돈을 받고 피를 파는 사람들이 병원마다 줄을 섰다고 한다. 그중에는 생계를 위해 자신의 피를 지금의 기준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을 돈을 받고 팔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중간에서 소개해 주는 브로커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헌혈은 그저 비교적 쉬운 생계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피를 받은 사람들을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의 마음은 감사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헌혈이 무료로 전환되고 자발적 헌혈을 시행하게 됨으로써 예전보다는 많지는 않아도 우리나라는 지금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의 자발적 헌혈 국가라고 한다.
20대 후반에 10회 헌혈을 마쳤다. 그리고 우연히 회사로 헌혈 버스가 와서 하게 된 건 2022년 가을 정도였는데 그때도 별생각과 이유 없이 버스가 보이기에 가서 헌혈을 했다. 11회 차였고 레드커넥트라는 어플을 설치하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권유에 어플도 설치했다. 버스가 또 오면 올 때마다 헌혈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는데 오지 않았다. 아마 코로나의 여파일 거라 생각했었다. 빠르게 헌혈은 내 기억에서 잊혔다.
2024년 11월 어느 날, 나는 다시 태어났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꼬아서 생각할 필요 없이 오늘 내가 제일 행복한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자는 마음이 들었고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헌혈이 왜 떠올랐는지 몰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유를 생각해 봤다.
내가 그리는 인생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도와주고 내가 좋다고 여기는 인생의 부분을 그런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사람이다. 어둡고 힘들고 지치기만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 다정하고 따뜻하고 편안함을 갖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직접 몸과 마음으로 느껴가고 있다.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내가 할 수 있는 봉사가 무엇일지 생각했다. 양로원이나 유기견 보호센터 같은 곳에 가서 봉사를 하는 것도 좋지만 굉장히 내향적인 내가 하기엔 조금 어렵다고 여겨졌고 그때 헌혈이 떠올랐다.
그날부터 바로 간호사 선생님이 추천해 주셨던 어플을 통해 예약하고 집에서 가까운 헌혈센터를 찾아 8주에 한 번 전혈 헌혈을 하고 있다. 다른 마음은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전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우연찮게 그 생각이 든 게 24년 크리스마스이브다. 바로 예약하고 헌혈센터로 갔다.
이벤트 기간이라며 지역 상품권도 주었는데 굳이 쓸데도 없거니와 누군가에겐 선물이 될까 싶어 내 팔에 바늘을 꽂던 선생님께 선물로 드렸다.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일지라도 조그만 선물이라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됐다.
헌혈은 거창하게 많은 것을 나눌 수 없어도 내가 가진 것 중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헌혈을 끝내고 빵빵해진 팩을 보고 있자면 신기하게 느껴진다. 몸에서 빠져나와 저곳에 모인 내 피들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 온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헌혈의 집을 갈 때마다 느끼지만 언제 방문해도 헌혈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부터 나보다 훨씬 나이가 있으신 어른들도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볼 때면 왠지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한다. 또한 헌혈은 건강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건강한 피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이 헌혈이기도 하니까.
사실 지금도 헌혈하는 사람들의 각자의 사정이나 마음은 잘 모른다.
다만 나는 내가 세상에 할 수 있는 봉사를 건강이 닿는 곳까지 할 것이다.
오늘로써 13회 차를 마쳤다.
더 자주 할 수 있는 다른 성분의 헌혈도 많지만 나는 전혈로 50회를 채우는 것이 목표다.
그때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건강하게 살며 목표를 달성하는 인생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