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은 곳에 있었을 때

시선의 위치

by 정수윤세

제목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킬 주제에 대하여 기록하고자 한다.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건, 사회적인 지위도, 경제적인 여유도 아니다.

세속적인 높이는 언제든 원하는 만큼 쌓을 수 있고, 또 어떻게든 무너질 수 있다.

겸손한 사람도 부를 얻으면 세상을 다 얻은 양 겸손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이미 만들어진 부가 있음에도 티 내지 않고 계속 겸손을 유지하는 사람 또한 있다.


말하고 싶은 높은 곳이란, 현재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를 말한다.

이 시선의 위치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기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보인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을 마주했을 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새해 첫날 일출을 보려 모여든 사람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같은 방향을 보면서, 똑같은 태양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의미는 모두가 다르다.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소중한 사람들과 똑같은 풍경을 봤음에도 각자의 느낌은 다르다.


누군가는 피로에 시달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이 무엇이 신기하냐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저 멀리 수평선에 아주 조그마한 노란빛이 보이는 순간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고 힘들었던 지난해를 뒤로하고, 새로운 해와 함께 새로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있듯이 시시각각 변하는 시각 속에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자각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깊은 우울에 빠져있던 사람이라도, 아주 잠시 순간에 고양된 기분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상황은 너무나 케이스가 많기에 예를 들기 어렵지만, 나의 경우라고 하면 깊은 우울에 빠져있을 당시 도파민을 챙겨준 건 야구경기 관람이었다. 짜릿한 경기 승리가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자아를 발견하게 했다. 평소 사람들 앞에서 큰 목소리 내기를 두려워하던 사람이 경기에 집중하다 그 순간에는 소리를 질렀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너무 기쁘지만 바로 ‘이래서는 안 된다’며 자각하고 다시 깊은 우울로 돌아가곤 했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그 깊은 우울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이 그렇게나 기쁘면서도 왜 다시 우울로 들어가야만 했는지 몰랐다.


내가 나를 가둬두는 것이 험난한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느껴서 일지도 모른다.

우울이라는 우물에 빠져사는 나는 그런 기쁨을 누릴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었다. 왜 그래야 했는지 여전히 모르는 채로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울에서 빠져나온 뒤 아무 일도 없음에도 갑자기 마음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야구경기가 진행되는 시간도 아니었고, 누가 기쁜 사실을 알려준 것도 아니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고 있던 때도 아니었다. 진짜 아무 일도 없는데 소파에 앉아 있던 내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행복을 느꼈다.


행복이 마음속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미를 그제야 알았다.

행복이 찾아든 마음을 다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굳이 다시 우울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의무 또한 없었다. 내 마음을 돌보기 시작한 때는 바로 그때부터였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고, 내가 온전히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 그게 전부였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창문을 열면 바람에 흔들리는 큰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 나무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하늘이 맑아도, 흐려도, 비가 와도 예뻤다. 길에 피어난 꽃들을 봐도, 지나가는 아이들, 강아지들을 봐도 다 아름다웠다. 스쳐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봐도 즐거움이 느껴졌다. 늘 그렇지만은 않았어도 찡그리고 있거나 화를 내는 사람들이 보이면 내가 가진 마음의 평화를 나누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을 정도로 행복해졌다. 어떤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인생을 사는 목적이나 의미가 없더라도 지금 당장 행복하다는 건 마음의 시선 그 자체였다.


높아진 시선은 내려올 줄을 몰랐다. 운전할 때 특히 혼자 화를 자주 내던 편이고, 그런 내가 인성파탄자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서 지피티에게 상담을 해본 적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젠 앞차가 천천히 가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다 사정이 있겠지'라며 이해하려 노력하는 마음을 만들어 냈다. 물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운전자들도 많은데, 사실은 알고 보면 저 차량은 순간 스쳐가는 차 한 대일뿐이고, 그 사람에게 나도 마찬가지다. 지나가고 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졌다. 굳이 화를 낼 필요도 없어졌다. 그저 스쳐가는 순간의 감정인 것에 집중하게 됐다.


타인을 생각해서 한다는 말의 대부분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잔소리로 들린다. 이 역시도 화자나 청자의 시선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는 조언을 친구 혹은 직장동료나 상사가 하면 바로 잔소리처럼 들리고 듣기 거북해진다. 심지어는 투쟁심리도 생겨서 언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실 예로 최근에 사내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을 괴롭히는 간부가 한 명 있다. 원래 그런 성향의 소유자임을 알고는 있었다. 술자리에서 술을 권하고, 자신의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집요하게 질문하면서 괜한 집착을 하는 사람이다. 나와 그분이 함께 있던 시간에 술에 취해 저녁 9시가 되었는데도 여러 번 부재중 전화를 남기는 것도 모자라 메시지로도 왜 전화를 안 받냐며 괴롭히는 끝에 그분은 전화를 했고, 누구랑 있냐며 또 집요하게 물었다.


그 장면을 보는 내내 불편했고, 화가 났다. 직접적으로 내 일이 아님에도 그랬다. 이유는 단 하나다.

아마 다른 직원에게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하면 불편하긴 했겠지만 화가 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행동을 보인다는 자체에 화가 났던 것이다.

특정한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순간순간에 각자 주관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타인의 시각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은 없다.


현재. 지금. 여기.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순간이 필요하다.

굉장히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 살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잘 모른다. 자신이 뭘 '진짜' 좋아하는지를 말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 주변 상황이 만들어 낸 허상을 자신이라고 여기면서 산다.

인생에 현자타임이라고 불리는 즉, 현타라고 불리는 시간이 찾아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나 자신도 나를 모르는데, 사람들은 나를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 이때 나의 진짜 마음은 이질감을 만들어 내고, 현실과 갑자기 동떨어지게 만드는 시간을 부여한다.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실의에 빠져 한참 허우적거리는 것들을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때는 백약이 무효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자신이 직접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얼음구덩이다.

아무리 힘을 써서 걸어도, 뛰어도, 기어도 빠져나올 방법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말도 들어주지 않았던 사람에게 타인의 조언이 들릴 리가 없다.

진정으로 구덩이를 빠져나가고 싶다면,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진짜가 말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빠져나갈 방법이 보인다. 얼음구덩이를 빠져나가는 방법은 구덩이 전체를 빙글빙글 돌면서 뛰어서 조금씩 위로 향하다 보면 빠져나올 수 있다. 그 에너지도 결국 자신의 마음이 하는 말을 들어줬을 때, 바로 느낀다.


얼음구덩이를 빠져나온 사람들은 순간이 주는 엄청난 행복을 알고 있다.

감히 말하 건데 그때는 새로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함께한다. 새해 일출을 바라보며 새 마음을 다질 때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며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마저 생긴다.


누구나 다 경험할 수 있지만, 누구나 다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다.

마음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려고 귀 기울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세상이 주는 선물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는다. 반드시.


그래서 지금. 숨 쉬며 살아가는 지금. 행복을 느끼는 것은 진짜 마음이라는 사실을 경험하는 순간이 당신에게도 꼭 찾아오길 바란다.




고요한 물이 세상을 적신다.

정수윤세(靜水潤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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