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단언컨대 성인이라면 인생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느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의 인생에도 고난이 있고 내리막과 오르막이 공존한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고난을 겪고, 고행을 견디는 마음을 알고 싶어졌다.
각자 고난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히 상황이 주는 압도감도 있겠지만 그것이 아닌 개인의 고민에서 뻗어 나온 심리적 힘듦은 자신이 만든 고난이다.
오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함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상황적인 고난은 신이 아닌 이상에야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지기에 상황에 압도되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압도되지 않는다면 이상하다고 여길 만큼...
상황이 주는 고난에서 생사를 오가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 사람이 가진 힘만으로는 이겨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물론 체념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려는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마음에선 왠지 모를 울컥하는 감정이 피어오른다.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자신이 가진 고난을 극복했다는 기사를 보고 뭉클한 감정이 생기는 이유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만든 고난은 형태부터 다르다.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승리할 수 있건만 적의 규모도, 생김새도 알 수 없다. 아주 어두운 동굴에서 횃불 하나만을 들고 천천히 탐험하듯이 자신이 만든 고난을 관찰한다.
분명히 외부적인 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문제를 만들고 고난이라 생각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남에게 탓을 해봐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마음이 만든 고난은 회복까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편이다. 빠른 해결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저 검은 암막 같은 천으로 자신의 고난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하며 다른 일에 집중하며 사느라 그렇게 보일 뿐 문제의 근원은 해결되지 않았다.
고난은 고행을 만들어 낸다. 표정에서도, 말에서도, 행동에서도 보인다. 고행에 빠진 사람은 실의에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의욕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겉모습만 그럴 뿐 마음 안에서는 밤과 낮을 나누지 않고 끊임없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그러니 에너지 소모가 클 수밖에 없고 외적으로 지쳐 보일 수밖에 없다. 고행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발로 생을 선택할 수도 있고 마지막을 선택할 수도 있다
아주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자신의 발로 마지막을 선택한다는 마음은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자신이 가진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무게를 나눌 수 있는 나만의 ‘진짜’ 소중한 단 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기에 외로움의 끝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가족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상투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도 소용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내 마음이 어떤지 ‘진심’으로 물어봐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딱 한 사람만 있다면 더 살아볼 가치가 있는 세상이라고 여길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작은 모순이 발생한다.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데,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자신이 자신을 위로해주지 못하는데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애초에 문제의 근원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그런 무거운 선택을 한 사람이 잘못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누구의 무엇이 되기를 생각하기보다 나로서 나인 삶을 사는 선택을 한다면 단 한 번뿐인 인생의 마지막을 그렇게 결정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주변에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사회적, 경제적 여유가 있든 없든 외부적인 요인이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다. 마음의 여유가 얼마나 있는지 그 마음의 여유는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는 마음을 말한다. 남들이 어떻게 살고,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자신의 방식과 색깔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취미를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 혹자는 그런 사람들을 보곤 말한다. “참 세상 쉽게 산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묻고 싶다. 그런 말을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비아냥인지 아니면 부러움인지 말이다.
비아냥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부러움의 경우라면 ‘왜 지금의 당신이 그럴 수 없는지’에 대하여 물을 것이다. 분명 지금 처해진 자신의 상황에 대해 열거할 것이 뻔하다. 가족이 있고, 지켜야 할 것들이 있고, 책임을 질 것들이 있고 같은 이유다. 맞는 말이다.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다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자신이 선택한 자신의 색깔은 그런 것이다. 타인을 부러워할 필요도, 여유도 없다.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과연 고민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해도 그때는 즐겁겠지만 공허가 찾아오면 쉴 새 없는 고민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고민을 고난이라고 칭하고 고행이라고 부른다.
세상은 바라보기 나름이다.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할 거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진정한 나의 모습은 오로지 나만 발견할 수 있다. 누구도 대신해 주거나 함께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옆에서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진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응원해 주는 일 그 하나다. 우리는 그런 고행을 견디고 또 버텨서 지금에 다다랐다.
지금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지금이 고정관념의 틀을 깨버릴 시간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부모님도,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지분을 말하고자 한다면 전혀 없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그들과 관계를 맺고 인생을 살아오고 신념을 만들어내고 색깔을 만들어 낸 건 오직 ‘나’ 그 자체이다.
내가 내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일이 고정관념을 깨는 첫 번째 과정이다. 타인에게 기대하기보다 나에게 기대하는 편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 왜냐하면 실행하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타인이 행동해 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상대가 해줄 거라는 헛된 기대를 던져버리고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아주 잘 견뎌 온 나에게 대단하다며 박수쳐주고 토닥여줄 시간이다. 나를 위한 첫 번째 응원단을 밖에서 찾는 게 아니라 안에서 찾으면 된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남은 인생이 아주 조금은 달라 보이지 않을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한 번 사는 인생에 있어서 내가 나로서 후회 없이 살았다는 인생의 소회를 느끼며 숨을 거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 인생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태주 시인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필멸자다. 반드시 사라진다.
무섭지만 진짜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이들에게 일어날 100% 확률의 일이다. 그리고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전혀 모른다. 가까운 미래에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가족과 살 집이 있다면, 멋진 차가 있다면 같은 ‘if’를 마음속에서 지웠으면 좋겠다.
희망은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오늘이 행복하지 않은데 내일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 굉장한 모순이다.
내가 나로 살면서, 오늘,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하는 이유이자
고행을 견뎌내는 강한 마음이란 온전한 나와 오늘을 보고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이다.
고요한 물이 세상을 적신다.
정수윤세(靜水潤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