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 문장을 머릿속에 결론지어 생각하게 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은 이미 그 사람에게 연결되고 싶어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명분을 찾았다.
이유는 하나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준비하고 싶어서다.
사람이라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통을 싫어하고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인 나도 똑같다. 과거에 받았던 상처가 너무나 아팠기에 그 고통을 다시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3년 전, 어느 초겨울에 동네 커뮤니티를 통해 소모임에 하나 가입을 했던 적이 있다. 동네 친목 모임이었고, 그저 진짜 가까운 동네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소소한 마음으로 가입했었다. 여러 사람들이 많았지만 남자들은 역시 여성 회원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행동들을 주로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도 사람이기에 외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기는 했어도 딱히 대화를 해보거나,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몇 번의 모임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일도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조금씩 친해졌다. 그녀는 굉장히 말수가 적어서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일 자체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면 그제야 웃으며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피부는 많이 하얀 편이었으며, 눈이 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상이 었다.
그녀에게 다가오려는 남자들도 많았다. 그중에 나이대가 비슷한 남자 하나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푸시했다. 좋아한다.라고 직접적인 단어만 꺼내지 않았을 뿐, 주변에서 누가 보더라도 좋아하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정작 그녀는 부담스러워했고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오히려 그 남자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수록 그녀는 밀려서 내게 다가왔다.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내가 오히려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속삭이듯 말하던 그녀와 조금 더 가까워졌고 둘만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카페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같이 저녁식사를 하고, 공원 산책을 하면서 편안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둘이 있을 때 더 편하게 느낀다는 게 느껴졌다. 카톡에서 나누는 대화 자체도 굉장히 가벼워졌고 빠르게 썸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두 번째 만남을 계획하고 있던 때에 문득 그녀가 먼저 그때 만나서 꼭 전해줄 말이 있다고 했다. 웃으며 얘기하는 그녀의 텍스트 안에서도 무거움이 느껴지진 않아서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만나서 말해준다는 그녀의 말에 기다릴 수밖엔 없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돌싱이라거나, 아이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며 걱정 말라며 웃었다.
그때 마음이 내려앉았다. 그녀가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하던 때에 나도 있다고 했었다. 그건 바로 내가 돌싱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 말에 이어서 ‘오빠도 그런 건 아니죠?ㅎㅎ’ 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렇게 묻는 그녀의 질문에 거짓을 말하고 다시 사실을 말하는 건 당연히 안 되겠다 싶어 사실을 고백했다. 나는 사실 결혼을 했었다. 그러나 너에 대한 마음이 지금 거짓은 아니다.
카톡 옆에 1이 사라졌음에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방금까지만 해도 웃던 그녀의 텍스트의 장르가 분노로 바뀌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그럴 거면 자신과의 둘의 시간을 가졌던 첫 만남 때 말을 해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실망이라며, 그런 신분임에도 왜 자신에게 접근했냐며 수도 없이 쏟아냈다.
솔직한 심정은 갑자기 분노를 표출하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일인가... 싶다가도 그녀의 말대로 첫 만남 때 말하지 못한 부분은 잘못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과했다. 쉴 새 없이.
조금은 누그러졌는지 공격성이 가라앉은 그녀는 마지막에 비수를 꽂았다. 돌싱인데 왜 평범한 사람들이 있는 모임에 들어왔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 사회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돌싱은 결혼이라는 법적제도 안에 묶여 있다가 해체된 하나의 인격체다. 장기연애를 하다 헤어진 커플은 돌싱이 아니다. 연애가 짧았어도 혼인신고 그 자체 하나만으로 헤어짐을 선택하는 건 돌싱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린다. 인식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질문에도 미안하다는 말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 상처는 시렸다. 피가 흘렀다. 딱지가 내려앉지 않았다. 상처가 아물 생각조차 않았다. 나라는 사람은 초혼인 사람들에게는 절대 다가가서도 안 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재에 있다. 그녀와 지금의 사이에 연인이 있었다. 그녀는 같은 돌싱이면서 자녀도 있었다. 그때도 같았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만남에서 신분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마음속에 들여놓은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극도로 조심스럽고, 무섭다. 멀어지게 될까 봐 그리고 또 상처 입을까 봐..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건만 기억 속에 너무 생생하다. 그 또렷한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서 또 받는다면 바닥을 모르고 내려앉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나를 지켜야만 했다. 지켜야 살 수 있었다. 겨우 어둡고 컴컴했던 지하에서 빛이 있는 곳으로 나왔건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시 내게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좋아하는 마음을 최대한 억누르려고 했다. 아닐 거라며, 잠깐 그 사람이 나에게 친절했기에 호의에서 오는 가벼운 호감일 거라 생각했다.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문을 닫는 일뿐이었다. 문제를 원천봉쇄하여 애초에 문제를 야기시킬 원인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그 사람을 알지 못했던 2~3개월 전의 혼자여도 행복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돌아가야만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사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눈을 감고 생각하면 그때의 행복한 장면이 지금도 피부에 소름이 돋을 만큼 행복하게 느껴진다. 다만, 아주 큰 문제는 그 사람의 얼굴이 그곳에 겹쳐있다.
나의 아주 행복한 꿈에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상처 입었던 나의 마음은 여전히 조심스럽기만 하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함을 머리로는 알면서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사람도 나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렇지만 그 기회가 아직 내가 가진 신분이라는 카드를 꺼내기 전이기에 두려운 것이다.
잠시 썸의 관계에 있던 그녀가 그랬듯이 지금 이 사람도 갑자기 돌변할까 그게 두려워서 그냥 지금 관계에만 만족하고 더 다가가지 말자는 마음도 있음에도, 자꾸 떠오르고 그 사람의 에너지에 빨려 들고 있음을 느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이려 하고 있다. 그곳을 거쳤을 때, 내가 너덜너덜해졌을지 아니면 상처 입었던 마음을 그 사람이 치료해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무서워서 내가 겁쟁이이기에 선뜻 다가설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
사실 내가 사랑하던 것들은 결국 사랑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내가 진심을 다해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줬을 때의 기쁨.
나의 일상을 소소하게 공유하는 그 작은 순간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다.
사람은 정말 죽을 만큼 힘들어도 단 한 사람만 있으면 산다.
나를 빛으로 이끌어 주었던 존재도 사람이었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평생 감사할 은인이다.
아팠던 상처도 있었음에도, 피 흘리고 있음에도, 그 따뜻했던 온몸에 소름이 퍼질 정도로 안온했고, 행복했던 기억을 이름 모를 그 어떤 한 사람에게서 찾고 싶은 것이다.
사랑을 받기보다, 주고 싶은 사람이다.
사랑도 과하면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듯, 온전히 나를 포용해 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 하나라면 나 역시도 그녀의 모든 것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있기에..
사랑이 없이는 흘러가지 않는 이 세상에서 사랑을 무서워하는 존재가 모순적이게도 사랑을 가장 원하고 있다.
사랑의 모양도, 크기도,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 듯 모두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사랑의 모양을 갖고 있는가?
고요한 물이 세상을 적신다.
정수윤세(靜水潤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