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왜 행복할까?

현재를 사는 삶

by 정수윤세

현재에 집중해 살아가라.라는 조언을 생각보다 심심찮게 듣게 된다.


현재에 집중하며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 다 자신의 의지대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 안에서 과거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도 있고, 이미 현재에 충실한 사람도 있고,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셋 중 누가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정답은 없다.

먼저 과거에 사로잡힌 사람은 과거에 발생했던 사건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원인이 연인과의 이별이 될 수도 있고, 개인적인 사건이 있었을 수도 있고, 심리적인 충격을 받았던 일이 될 수 있다. 하나 공통적인 점은 절대 긍정적인 에너지는 아니라는 점이다. 본인의 입으로 과거의 영광을 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빠져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 속에 현재도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현재 또는 미래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성취감과는 다르다. 성취감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나의 힘으로 이루어낸 성과를 바탕으로 만족감을 얻어 자존감을 높여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태도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에너지 넘치는 일상을 만들어 준다. 성공 사례가 있으니 더 큰 도전을 하고 혹시나 실패하더라도 다시 새롭게 도전하면 된다는 마음을 가진다. 그에 반해 과거에만 빠져 있는 사람은 현재에도 과거의 영광이 지속되고 있다고 믿는다. 타인들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도 않고 이미 이루었으니 더 이룰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바꿔 말하면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는 에너지가 고갈되어 더 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현실에 안주하고 살며 미래를 꿈꾸는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 혹은 발전적인 길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일은 여름에 파도 위를 가르며 플라스틱 판자 하나에 의지하는 서핑처럼 중심을 잡고 있기가 어렵다. 아무리 중심이 단단한 사람이라도 자연을 이기는 사람이 없듯 상처를 건드리면 아파하고 미래 목표를 타인이 부정적인 시각에서 해석하고 세뇌하듯 말하면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과연 옳은 길인지 마음에서부터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소명이라고 믿고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결승점에 원하는 게 없다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맥이 풀릴 수밖에 없다. 가보지 못한 미래 장소에 먼저 가본 사람의 말이라면 더욱 신빙성이 있게 들린다.


하지만 결단코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믿으면 안 된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지만, 타인의 행복에 대하여 아무런 연관도 없는 사람이 시기하거나 질투하기도 한다. 원하는 목표 지점에 먼저 가본 사람이라도 지금까지 버티며 걸어온 노력을 무시하거나 경시해선 안되고 사람마다 개인의 능력이 다르고 속도도 다르기에 먼저 간 사람은 나보다 시작이 빨랐거나 처음부터 재능이 있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정한 목표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아무 조언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누군가에 젠 형편없어 보일지 모르는 목표지점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미치도록 절실한 목표다. 태어난 배경, 성장환경, 지혜, 지식에 따라 속도가 다르고 개인의 입맛이 다르듯 목표지점을 느끼는 마음 또한 다르다.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라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이 될까? 이 세상에 ‘직업’이 단 하나라면 굳이 모두가 그 직업을 해야 할 필요나 이유가 있을까? 내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0만큼의 노력만 필요했다고 남들도 모두 같지 않다. 누군가는 100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목표지점에 가까워지고자 했을 텐데 타인이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건 명백한 월권행위이다. 혼자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기에 우리는 서로를 모두 존중해야 한다. 나이가 어리든 적든 상호 간의 존중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은 어느새 뒷전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MZ세대가 나타나면서 어른이라고 무조건 존중받는 사회가 아니게 되었다. 정말 안타까운 점은 사람들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고 있음에도 돈을 좇아 나선다. 누군가는 돈을 위해 신념과 자존심마저 포기해 버린다. 개인의 선택이기에 비난하고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라도 꼭 살아남아야만 하는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고 믿고 싶다.


‘YOLO’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You Only Live Once : 인생은 한 번뿐이다) 보수적인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젊은이들의 기행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음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자신이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벌어 인생에 사용하는 것에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 사람의 미래는 그 사람이 책임진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어른들의 사고방식에서는 주를 이뤘던 가장 큰 사회적 개념은 ‘평생직장’이었다. 급여와 복지가 좋아서 사회제도에서 마련해 준 나이까지 정년을 채워 일을 하고 번 돈으로 결혼도 하고 자녀들도 낳아서 기르고 생활한다. 자녀가 크고 나면 모은 돈을 결혼자금에 보태준다. 시장경제가 성장한 만큼 물가도 상승해 왔는데 노후 자금이 과연 넉넉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돈을 차곡차곡 모으는 게 중요하다고 하실 수 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화폐가 오늘 1,000원짜리가 20년이 지나도 과연 1,000원 일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젊음을 모두 ‘평생직장’에 투입하여 살아오신 분들은 나이가 들고나면 살아온 삶에 무조건 만족하실까? 그것도 아니다. 젊었을 때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미련으로 남는다. 그래서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같은 IF가 꼭 등장하고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도 항상 등장한다. 안타깝지만 지난 과거는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고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추억 또한 세상에서 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살 수 없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구교환 배우님이 맡으셨던 배역에서 하셨던 대사 중 ‘어린이는 지금 놀아야 한다.’라는 대사가 있었다. 옛 어른들은 어린이이던 시절 공부를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 하신 분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가정환경이 어려우면 공부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자녀 혹은 손자 손녀가 공부로 성공해 사회지도층에서 편하게 인생을 살게 하고 싶은 마음에 어려서부터 놀이터보다는 학원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에는 분명한 긍정적 요소도 있지만 어른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학생들도 생기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젊은이들은 젊음을 즐겨야 할 의무가 있다. 무조건 YOLO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아쉽지만 현실적으로 금수저가 아니고서야 YOLO로 평생 살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젊음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즐기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가 있어야 우리 사회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음식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는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내면 경험에서 방대한 양의 정보와 지식을 습득한다. 차마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도 머릿속에 자동 저장이 되고 제반 지식들을 바탕으로 YOLO를 종료한 이후 보다 나은 노후를 설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견문을 넓히면 꼭 우리나라 안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제한을 두지 않을 수 있고 세계 어디서든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젊을 때 해보지 못한 것을 나이가 든 뒤에는 상당히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건강 등 여러 요인이 방해 요소가 된다.


각각의 개인이 추구하는 인생의 방식은 모두 다르다. 응원할 수 없다면 혀를 차지도 말고 손가락질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을 대신 책임져주거나 살아줄 게 아니라면 부정적인 평가를 귀에 들리게 하는 건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긍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는다. 인생은 한 개인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적어도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돌을 던지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하다. 무심코 던진 돌에 지나가던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꼭 물리적인 피해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피해보다 더 강한 고통을 동반하는 건 심리적인 고통이다. 비난하고 싶다면 두 손을 들고 박수치길 바란다. 박수의 의미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선택하게 될 테니 말이다.


나는 그래서 지금. 현재가 너무나 소중하고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오늘도 나와 다른 인생을 사는 누군가에게 무수한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고요한 물이 세상을 적신다.

정수윤세(靜水潤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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