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조급해지지 않기

어차피 해결돼!

by 정수윤세

나는 MBTI 유형 중에서도 J형, 그러니까 어떤 일이든 계획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처럼 어떤 일들을 머릿속에 계획한다.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실행력에는 차이가 있기도 한데, 일단 계획하고 상상하며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예상 속에서 시나리오를 그리며 상황을 통제하고, 당황하지 않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꼭 계획형 인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저마다 원하는 인생에 따라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설계하고 행동하며 상상에서 그리던 모습을 현실로 바꾸어내려 노력하며 살아간다. 나는 남들에게 아주 무던하게 살아가는 듯 보여지는데 사실 마음속에선 굉장히 바쁘게 고민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겠지만 인생은 절. 대.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애초에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예상처럼 흘러가는 일이 있다면 그것만큼 짜릿한 느낌을 선사하는 경험이 인생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출근 시간에 마주하는 지하철, 버스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곤 하는데 가끔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의해 지연이 되는 일이 있다. 하필 또 그런 일은 마음이 급할 때, 출근해서 꼭 무언가를 해야 하거나, 회의에 참석해야 하거나, 늦장을 부리다가 허겁지겁 출근길에 나설 때, 벌어진다.

벌써 한숨이 나온다. ‘하.. 내 인생은 항상 이렇게 꼬이는구나..’라며 체념하고 회사에 도착해 어떤 변명을 늘어놓을지 구상하며 고개를 숙이고 회사에 들어선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모두가 따가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봐야 하는데, 본인들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옆자리의 동료에게 물어보니 회의가 취소됐단다. 그 순간 엄청나게 짜릿한 기분이 들고, 소름이 돋는다. 인생이 항상 힘들다고 여기고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일! 하늘이 도왔다.'

이렇듯 인생은 도무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에 있다. 눈을 감으나 뜨나 똑같은 수준이다. 할 수 있는 건 바로 눈앞에 다다랐을 때, 그것이 뜨거운지, 아니면 따가운지 피부에 닿았을 때 그제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상하고 미래의 상황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다. 예상이 빗겨나갈 순 있어도 예상하고 준비했기에 의외의 상황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홍철 님의 유튜브를 보며 영감을 받은 부분이 있다. 무슨 일이 생기든 ‘어차피’ 해결된다는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진짜다. 영상 속의 에피소드는 해외에 나가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데, 이륙하자마자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회항하게 되었다. 문제가 생긴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을 할 수 있을지부터 걱정하게 되고, 다음 여행지에 준비해 놓은 일정들을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하게 된다.

결과는 무사히 착륙했고, 다음 비행기도 바로 준비가 되어 일정에 늦지 않게 도착해 문제없이 모든 일정을 소화한다. 오히려 문제가 있었기에 다음 여행이 더 짜릿하고 즐거워졌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어차피’라는 단어의 마법을 반신반의하며 사용해 보기로 했다.

평소 차분하다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듣는 편인데, 운전할 때만큼은 혼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타입이다. 그렇다고 경적을 막 울린다거나,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퍼붓는다거나, 보복운전 같은 걸 하지는 않는다. 갑자기 끼어들더라도 방향지시등만 켜면, 들어와서도 비상등으로 감사인사를 전하면 마음이 사르르 녹는 타입이다. 그럼에도 당연하게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없기에 혼자 분노를 삭이는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어차피를 사용한다. '어차피 저렇게 빨리 가봤자 5분 차이야, 5분 늦는다고 인생이 바뀌는 건 없잖아' 하며 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


너무 남용해 버려서 마음이 풀어져 너무 느긋한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같은 고민을 하면서도 쓰게 된다.

가장 최근에는 회사에 눈에 들어오는 분이 생겼는데, 마음은 항상 달려 나가고, 그분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면서 업무적인 대화 이외에는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마음은 당장에라도 같이 시간을 보내며 더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내 마음처럼 될 리가 없다. 인생에 벌어지는 특정한 사안들도 그럴진대 하물며 사람과 사람과의 감정에서 예상처럼 흘러갈 리가 없다. 그래서 더 ‘어차피’를 사용한다.

'어차피 운명이라면, 인연이 될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이어지겠지!' 그게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그냥 회사동료로 남으면 그만'이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에 그분의 모습이 떠나가지 않는 건 내가 죽을 때까지 완전할 수 없는 인간임을 자각하게 된다. 사실 마음은 너무 간절하지만, 너무 간절하면 조급해지고, 표현하게 되고, 그 표현이 상대방이 멀리 심리적 거리감을 둘까 싶어서 지레 겁먹고 물러나는 겁쟁이인 것도 맞다.


내가 그분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성적으로 강한 끌림을 느껴서는 아니고,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 있어서도 아니라면 마음의 안정밖에 없는데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굳이 같이하고 싶을까? 그건 사람이기에 사랑과 연민이라는 감정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기에 혼자서 찾는 내면의 평화와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내면의 평화는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수도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혼자 채울 수 있는 영역은 한정적이다. 물론 혼자 찾는 내면의 평화로 매일 소소한 행복을 마주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부푼다.

그래서 더 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고, 예상하고, 판단하며 마음의 문을 열었다가, 또 닫았다가 혼자서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결국엔 결론지을 수도 없고, 지어서도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은 AI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도 주변에 있는 사람도 아니기에 그렇다. 혼자만의 상상으로 계획하고 예상하고 상상하는 일은 조급한 마음을 동반한다. 조급함은 꼭 사건을 데려온다. 보통은 저지르고 후회하는 소위 말하는 이불 킥하는 일들인데, 저지르고 나면 '그래! 저질러 봤으니 후회는 없어!'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왜 그랬지..'가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에 '어차피'를 새겨본다.

과거를 떠올려봐도 큰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현재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내 눈앞에 벌어진 일은 어차피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한 덩이일 뿐이다.

지금은 햇볕을 가리고 서 있지만, 언젠가 흘러가고 다시 찬란한 빛을 마주할 순간은 반드시 온다.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는 주문은 단 하나다.

무슨 일이든지. 어차피. 해결된다. 지나가지 않는 일은 없다.




고요한 물이 세상을 적신다.

정수윤세(靜水潤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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