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음
불과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새로운 회사에 이직하게 되면서, 새로운 시작을 기분 좋게 하게 됐다.
지금까지도 일에 대해서는 업무 파악을 하고 있고,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업무에 임하고 있다.
신입사원이지만,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또 작은 회사이기에 과장이라는 직급을 받았다.
과장이라는 직급을 가질 자격이 있을까? 나에게 물었었다.
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편해질 거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 작은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이성이 생겼다.
나이도, 성향도, 취향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단지 이름과 직급만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게 시선이 머문 이유는 결이 비슷해 보여서다. 무표정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아픔이 서려있는 느낌이었다.
급하게 다가가면 될 것도 안된다고 생각해 천천히 다가가기로 매일 마음을 다잡았다.
출근하면서 인사하고 아주 짧은 소소한 대화만으로 조금씩 정보를 습득해 나갔다.
1주 차가 조금 지났을 때, 상사의 업무 지시로 회사 팸플릿을 준비해야 했는데,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다들 모르는 분위기여서 천천히 찾아야지 하고 있던 때에 그 사람이 직접 내가 있는 2층에 와서 나를 불러다가 찾아주었다.
평소에 내가 알던 직장생활이라면, 그냥 어디 있는지 문자로나 알려주면 됐을 일을 직접 1층에서 2층까지 올라와 눈으로 보여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모습이 사려 깊은 사람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3주가 지났을 때, 전체 회식이 있었다. 자리가 멀어서 준비해 두었던 숙취해소제를 전해주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던 때, 비교적 나이가 젊은... 임원진을 제외한 사원들이 모이는 2차 자리에 부름을 받았다. 워낙 내향적인 사람이어서 이럴 때가 아니면 사람들과 친해지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거라는 생각에 인생 처음으로 술자리의 2차에 참석하게 됐다.
운명인 건지, 사람들이 벌써 내 마음을 눈치챈 건지 나의 자리는 가운데였는데, 그 사람의 바로 옆자리였다.
우리는 서로 등을 돌리고 양쪽의 사람들과 대화했다. 오히려 눈을 마주치는 일도 없었고, 대화도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화를 주고받기도 하고, 흔한 MBTI를 공유하고, 게임을 하면서 아주 약간의 스킨십도 이루어졌다. MBTI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정보는 나에게 꽤 의미가 있었다.
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임에도, 술을 마시고 나니 목소리도 커지고 텐션이 높아졌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참 신기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을 때, 괜스레 집에 잘 들어갔냐며 문자를 보냈다. 술에 취해서 인 건지 곧잘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고,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특이하다고 했다. 그 분의 뉘앙스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긴 힘들지만 특이하다는 말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칭찬으로 느꼈다.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다가 책을 읽는다는 말에 책갈피를 선물해 주겠다 했더니 선뜻 어떤 게 있냐며 물어보더니 골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겼다.
책갈피를 선물해 주기 위해 준비하면서 한 장의 편지를 준비했다. 도와준 일 너무 고마웠다고 좋은 책 많이 읽고 추천해 달라며 내면의 탐구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한 사람으로서의 그분을 알고 싶다고 적었다.
적을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전해주려고 보니 천천히 자연스럽게 다가가자는 마음으로 천천히라고 했지만,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였고,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다른 사람들의 일보다 그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일이 많았고, 왠지 불편해하는 기색이지만 같은 회사사람이기에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소엔 무표정인 사람이 대화를 할 땐 항상 웃어 보이는 일이 많았는데, 나와는 왠지 어색한 기류에 휩싸여 웃음을 잃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생각들이 올라왔다.
'아... 어쩌면 내가 저 사람의 웃음을 빼앗는 일을 지금 벌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알고 있다. 과거의 상처에서 삐져나온 나만의 망상임을...
하지만 비교적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는 나라는 사람이 저 사람에게 다가서서 설령 잘 된다고 하더라도, 불편함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 싶었다.
편지를 뺐다.
그리곤 포스트잇에 정말 간단히 감사인사를 적어 전해주었다.
선물을 전달해 주면서도 무슨 대화를 하지 않았다. 출근길에 마주쳤기에 웃으며 다가가 작은 상자를 내밀자 "아!" 하며 감사하다고 인사하신 그분을 뒤로하고 나는 내 일을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메시지로 감사하다며 다시 인사를 전해왔다.
부담감을 내려둔 나는 정말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끓어오르는 물의 기포처럼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았지만 굉장히 사무적인 대답과 편해 보이는 화법과 이모티콘을 주로 사용했다.
마음은 그렇지 못함에도...
사람의 마음을 어찌 한 순간에 접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에서 과거의 불행했던 기억이 떠올라 나를 괴롭히고 두려움에 갇히게 만들고,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만든 건 다름 아닌 나다. 시간이 꽤 지나서 상처가 다 회복이 된 줄로만 알았다.
아니었다. 아픔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과거엔 아픈 기억도 분명히 있지만,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들도 너무나 많다.
그러니 지금의 내가 살고 있을 것이고, 또 그런 비슷한 기억들을 하고 싶으니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그분에게 잠시 마음을 건네던 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과 좋아하는 일을 잠시 내려놨었다. 생각은 계속했지만 행동에 옮기지 못했었다. 내려두고 나니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내 마음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주려고 한다.
사람의 인연이란 게 어차피 노력으로만 되는 일도 아니기에...
진심으로 과거에 사랑하던 것들을 꺼내어 이곳에 펼쳐보려 한다.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남들이 보기엔 별게 아닐 수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결국엔 내가 나의 추억을 보고 느끼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으면 되니까
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고, 글로 표현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나는. 내가. 사랑하던 것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고요한 물이 세상을 적신다.
정수윤세(靜水潤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