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읽는 오페라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읽기 위한 두 번째 책인 <시라노>를 다 읽었다.
이 책은 17세기 실존 인물인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일생을 모티브로 한 희곡이다. 시라노라는 이름으로 알라딘 검색을 해 보니 정말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책이 한국에 한 권 번역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편의 멋진 오페라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읽으면서 머리 속으로 근사한 한 편의 오페라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제라르 드 파르디유같이 생긴 바리톤 가수가 시라노로 나올 것이고, 감미로운 음성을 가진 테너가 크리스티앙의 역을 맡아야겠지. 록산은 레지에로 소프라노, 드 기슈 백작은 테너로 하되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름 멋진 아리아 하나는 배당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아… 아마도 전체적인 음악은 소극장 오페라에 어울리는 가벼움과 예쁜 선율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만큼, 도니제티 풍이어야 할 것 같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언어에 대한 지식이 독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어, 그리고 프랑스어 운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면 이 책이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지식이 없는 내게도 이 책은 충분히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시라노와 같이 다재다능한 사람이 자신의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에 다른 사람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 주는 소극적인 (그리고 비극적인) 짝사랑을 평생 했다는 것이 좀 믿어지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글을 사랑하는 그래서 영혼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여인이 말을 제대로 못하는 크리스티앙의 모습을 보고 사랑이 급격하게 식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책에 담겨져 있는 풍부한 은유와 서정, 해학과 익살은 두고두고 곱씹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야기로서의 다른 약점들은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마지막 결말 부분만큼은 뭔가 좀더 의미있는, 그리고 여지를 남기는 좋은 결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사실 희곡을 이렇게 제대로 읽어본 것은 <실락원>, <파우스트>같은 책을 고생하며 읽었던 이후 약 15년 정도만에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오페라를 떠올리게 된 것은, 그 15년의 시간 동안 오페라에 대한 경험이 많이 쌓였기 때문일텐데, 역시 독서에 있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배경 지식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약 연극에 그런 관심과 지식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 희곡이 공연화되고 있는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을거다.
어쨌든… 전체적으로는 별 네 개를 줄 수 있는 좋은 책.
2007년 7월 26일 https://lordmiss.com/journal/archives/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