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하게 자신의 삶을 산 사람
“니가 무슨 김삿갓이냐!” 라는 문장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삿갓”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결국은 이름은 그대로 번역을 하고 주석을 달아서 설명을 해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외국인 독자가 이 문장이 담고 있는 뜻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900페이지가 넘는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읽으면서 했던 생각이 바로 이런 생각이었다. 내가 영국이나 프랑스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세 유럽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만큼, 책을 읽으면서 번역자가 정성스럽게 달아준 주석들을 거의 빼놓지 않고 읽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보니 어떤 책을 읽을 때 보다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속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렇게 느려터진 속도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읽음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주는, 문장이 주는 의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역자주를 보고서야 이 문장이 풍자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정도라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놓친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주는 재미는 상당했다. 바로 이전에 읽었던 시라노에서도 그런 점을 느끼긴 했지만, 위고의 문장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비유의 향연이었기 때문에 그런 비유의 향연을 즐기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레 미제라블 같은 소설과는 다른 종류의 소설이기 때문에 스토리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관조적으로 스토리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웃는 남자인 그윈플레인의 삶은 그의 웃(을수 밖에 없)는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우울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의 이유였던 그윈플레인과 데아의 사랑은 처음부터 가장 대조적인 만남이었으며,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무한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사랑이었지만 이런 아름다운 사랑, 그리고 잠깐의 놀라운 비상조차도 그의 삶이 가진 슬픔을 보상할 수는 없을만큼 그렇게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것이 세상이라고 하는, 혹은 시대라고 하는 괴물과 맞서야 했던 모든 사람들의 숙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숙명에 적당히 순응하여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윈플레인처럼 처절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낸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이 뛰게 만드는, 그리고 감동적인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를 모두 경험해 본 그윈플레인이 잉글랜드의 귀족들에게 처절하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요구했던 그 연설이 귀족들에게는 하나의 너무나 웃긴 촌극에 지나지 않았음을 생각해 볼 때, 그리고 당시의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대부분의 평민들에게도 그렇게 받아들여졌음이 분명하다고 볼 때,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넓고 편안한 길이 아니라 좁고 헙한 길, 그러나 가야 할 길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한 순간의 재미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분명히 좋은 책이다. 두 번 세 번 읽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최근에 만나기가 어려웠던 그런 종류의 책이다.
2007년 8월 20일 https://lordmiss.com/journal/archives/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