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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 Sep 13. 2023

동상 걸리겠다

홍범도 형 동상 걸리겠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산주의라고 하면 학을 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기간 공산주의자들에게 당한 게 많으니 어쩔 수가 없다. 전쟁도 겪고, 지금까지도 온갖 외교적, 군사적 도발과 위협을 겪으니 치가 떨릴 수밖에. 그들이 주장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산주의가 아니라 중세시대의 야만적 군주제나 다름없다고 해도, 공산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적대감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다. 나 역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니.

하지만 정치인들은 달라야 한다. 다양한 국가 이념과 사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 사회에 적합한 제도를 만들어 입안해야 하는 직업이므로 그 직무적 성격으로 봤을 때, 정치인은 이념과 사상에 대한 전문가여야 하고,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의 상당수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였던 이유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역사적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회주의는 사실 독립운동가들이 먼저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식민지 조선을 대부분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외면했지만 소련만큼은 우호적 지원을 계속해왔기 때문이다. 소련의 동북아시아 정책에서 일본과 다른 열강들을 견제할 수 있는 전초기지로서 한반도가 지목되었기 때문이지만 이유야 어떻든 국제사회에서 유일하게 조선에 호의적인 관심을 보인 열강은 소련뿐이었다.

이념적으로도 사회주의라는 사상이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와 안녕을 표방하고 있는데, 당시 조선인들은 대부분 일제로부터 노예처럼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노동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강조하는 노동자 주의가 조선인들에겐 더욱 피부로 와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기본적으로 민주공화국을 표방했으나 그들이 천명한 삼균제도나 특히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전통적인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념의 근간이자 상징적인 제도이다. 그럼 우리는 임시정부도 빨갱이 취급을 해야 하는가.


지금이야, 소련의 해체와 사회주의의 한계를 목도했고, 특히 우리나라는 6.25를 겪었고, 러시아와 중국, 북한을 보면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이념의 명백한 한계와 모순을 직시하는 시대지만,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던 시대는 다르다. 원래 사회주의라는 게 자본주의가 가지는 한계점(부의 불균형, 그로 인한 계급구조 등)을 극복하기 위해 생겨난 이념이다.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로부터 파생된 개념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한계점을 걱정하던 지식인들에게 사회주의란 굉장히 이상적인 이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회주의야말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이념으로서 지금의 표현으로 하자면 당대 꽤나 트렌디한 사상이었던 것이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상당수가 지식인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자기 목숨까지 희생하며 조국의 독립을 열망했던, 투철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지식인들에게 아직 그 한계점이 발견되지 않은 사회주의라는 이념은 나의 조국을 위한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한계를 어떻게 알았겠는가? 우리 민족이 공산당과 그렇게 뼈아픈 전쟁을 치르게 될 줄, 그 전쟁이 2023년인 지금까지 끝날 기미가 안 보일 줄 독립운동가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절대로 불가능하다. 해방 후에도 한동안 소련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회주의의 첨단이었다. 냉전시대 초중반까지도 소련의 해체를 예상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우리 중 누군가 그 시대에 태어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말로가 어떤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념을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그는 반드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선택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이념적으로 진보된 시대에 살고 있을 뿐이다. 이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를 목도하고 있는 우리의 결과론적인 시각으로 그 시대 독립운동가들의 사상검증을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과연 그 시대 독립운동가들만큼 용감하고 절실한 애국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얄팍한 애국심을 앞세워 결과론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것은, 역사적인 맥락을 모르는 일반 국민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념과 사상,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직무적 전문성을 갖추어야 할 정치인들이 그러고 있다면, 그들의 기본적인 소양과 자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여야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대중들이 싸우면 싸울수록 좋다. 쪽수 많은 쪽을 지지해 주면 되니까. 아니면 (여론을 선동할 수 있을 정도로) 목소리 큰 쪽을 지지해 주면 된다. 이쯤 되면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 국익이나 국격이나 국민의 안전 기타 등등. 이것저것 골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머릿수가 많거나 목소리가 큰 쪽을 지지해 주면, 그 표가 다 나한테 오는데. 정치가 참 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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