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살이 시작, 스타트업 입성기

고시텔, 반지하를 거쳐 생존했던 지난 5년간의 이야기

모두가 개발자가 될 때, 딴짓하던 시절


2016년, 지방대 IT대학의 졸업을 눈앞에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 학기만 남기고 졸업은 해야 하는데 졸업이 다가왔지만, 졸업 후 진로 방향을 전혀 잡지 못했었거든요. 아마 졸업을 앞둔 예정자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컴퓨터 공학을 졸업했지만, 개발자로의 재능은 없었습니다. 알고리즘과 자료구조를 배우면서도 그래서 왜? 라는 질문만 몇 시간씩 붙잡고 있었던 저는 오히려 기획자,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가장 재밌었던 수업은 설계 수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만해도 서비스 기획자나 PM이라는 이름도 몰랐었습니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제가 필요한 곳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딘가에서는 내가 필요할 것이라는 한 줄기 희망으로 열심히 일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과외비를 벌면 주말에는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며 새로운 것들을 배우러 다니고 사람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2013년,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들었던 창업 아카데미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러면서 서울에서 새로운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사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절이었습니다.


현업 직장인, 인생 선배, 또래임에도 벌써 자기 회사가 있는 창업가들까지. 서울에는 참 다양한 사람이 많다고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딱 제가 창업을 할지, 취업을 할지 정하기가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운명처럼 스타트업에 입사하다


그러던 와중 어느 날 우연히 학창 시절 친구를 통해서 스타트업 하나를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약 10년 동안 서로 소식도 몰랐던 학창 시절 친구였는데, 오랜만에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닿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그 친구는 이미 저보다 1년 빠르게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의 소개를 통해서 제 첫 직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발자 교육을 만드는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회사는 저 같은 사람을 쓰고 싶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감적으로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컴퓨터 공학을 잘 살려서 할 수 있는 기획자로의 일이었고, 신입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지원했습니다. 인터뷰 과정에서는 불안하기는 했지만, 결국 합격을 하고 첫 직장을 위해 그렇게 2017년 여름,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고시텔에서 시작한 첫 직장생활


당시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습니다. 한 달 바짝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서 달랑 200만 원을 초기 자본으로 들고 서울 강남에 고시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참 그때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그리고 서울 가서 살 수 있겠니, 1년 안에 제가 울면서 짐 싸고 내려올 것이라며 성급하게 결정한 저에게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걱정은 이해가 되었지만, 스스로 결과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힘들면 2-3개월만 있다가 내려오겠다고 하고 고시텔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참 겁도 없고 무서울 것이 없었네요. 세상 물정도 모르고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을 덜컥 들어가고,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과 한 명의 친구는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했어요.


옛날 이야기하니까 재밌는데, 고시텔이라고 해도 살만한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보증금 없이 월세가 50만 원인 곳이었고요. 보증금 0원에 한 달만 살아도 되고, 중간에 며칠 더 살다가 나가도 일할 계산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 방은 제 몸뚱이를 늬울 수 있는 아담한 싱글 침대에 작은 옷장, 코딱지만 한 브라운관 TV, 손도 넣기 어려운 작은 창문, 삐걱거리는 옷장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었던 점은, 그 방안에도 샤워실이 있었습니다. 정말 농담이 아니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서면 끝인 공간이었고요. 서있던 자리에서 그냥 앉으면 변기가 엉덩이에 닿는 공간이었습니다. 때로는 너무 좁아서 변기 위에 뚜껑을 덮고 앉아서 샤워를 한 적도 많았고요.


가방 하나 들고 강남에서 시작하기


시간은 참 빨리 지나갔습니다. 1년은 금방이었어요. 사실 서울살이에 적응하고 회사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강남에서 일을 한다는 점에서도 어깨가 으쓱했던 지방러였어요.


주변에 사회 초년생 친구들을 알아가다 보니, 저와 같은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 집값이 워낙 비싸니, 다들 고시텔이나 반지하 원룸에서 많이 사시더라고요. 서울 강남에서 시작은 월세도 50~100만원 사이에서 시작한다는 걸 알고 치열하게 생존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첫 스타트업에서의 시작. 최저 임금 조금 넘는 인턴 월급이었지만, 그 모든 기회가 감사했고 1년 후에는 보증금 백만 원을 갖고 반지하 원룸으로 이사했고 차츰 나아진 생활을 해나가게 되었습니다.


반지하 탈출, 무모하게 살아보기


반지하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은 원룸으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보증금과 월세가 1:1 비율인 원룸이었는데, 월세가 최소 70만 원 이상인 방들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풀 옵션이었고, 정말 넓은 킹사이즈 침대에, 드럼세탁기에 모든 것이 다 있는 훌륭한 방이었습니다.


10년 된 구축 투룸 빌라를 만나다.


그리고 지금 저는 신사, 신논현, 논현, 언주 역을 거쳐 관악에 입성했습니다. 사회 초년생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가 바로 관악 아니겠어요. 그리고 지금은 운명적으로 리모델링 되어 좋은 컨디션의 투룸 빌라를 만나서 2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는 어엿한 직장인으로 서울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5년 전, 고시텔에서 시작했던 일들, 반지하에서 곰팡이들과 함께했던 일들도 이제는 모두 추억의 한 조각이구요. 차츰 연봉이 오르고, 제 집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고, 방도 한 칸에서 두 칸이 되고, 그리고 같이 사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완벽한 자립의 날이 올때까지


직장인 5년차, 저는 지금도 완벽한 자립의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아직 저는 집도, 차도 없이 언젠가는 또 새로운 거주지를 찾으러 움직여야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동안은 서울에 올라와 살아가는게 중요했다면, 이제는 서울에 끝까지 살아남아 자립할 수 있는 시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월급과 저축으로는 이 서울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 같구요. 5년 안에는, 오롯히 완벽하게 혼자의 힘으로 서울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래봅니다.




셀렉트웨이 대표 기획자

김로린 기획자

loreen@select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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