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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Aug 11. 2023

남편표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갔다 온 아이가 한 말

똑똑똑, 초보엄마입니다.

    



드디어 아이가 고대하던 인생 첫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아~ 빨리 방학이 왔으면!"이라는 뜻밖의 말을 꺼내는 가 하면, 학기 중에도 "오늘부터 방학하고 싶다"식의 푸념 섞인 말을 종종 하면서 방학을 간절히 기다려왔다. 가끔은 늦잠이 자고 싶고, 가끔은 날이 좋아서 놀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아이의 바람을 듣고 있으면, '참! 너도 매일 학교 다니느라 고생이 많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엄마아빠도 일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방학이 시작되었어도 돌봄 교실의 찬스가 있어서 부모님의 걱정을 덜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그렇게 열망하던 늦잠 퍼레이드를 무너뜨릴 수 없어서 일주일 정도는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원 없이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내버려 둘 셈이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하루도 못 가서 심심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아이. 뭐 할 게 없냐는 엄마를 보채는 통에, 나는 아이를 위한 새로운 방학 플랜을 짤 수밖에 없었다. 과학관, 도서관, 공연 등 체험투어를 일주일 꽉 채워 아이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시간을 채웠다. 이제는 충분히 만족한 걸까? 다행히도 내일부터 방과 후 수업과 돌봄 교실을 가야 한다는 것에 아이는 군말 없이 따라주었다.


문제는 도시락이었다. 배달은 학교의 안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허락되지 않아 집에서 도시락을 꼭 챙겨가야 했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평소에 좋아하던 지단김밥을 한 줄 사서 보내는 게 여러모로 간편해서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단, 날이 더운 걸 감안해 보냉팩에 잘 담아서 챙겨 보내기로. 이른 아침 아이와 함께 김밥을 사서 등교를 시키고 난 뒤, 오랜만에 밀린 업무를 하느라 오전을 바쁘게 보냈다. 한숨 돌리려고 하는 그때, 갑자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점심을 먹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한창 식욕이 올라오는지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프다고 하는 애가 갑자기 배탈이 났다고? 걱정도 잠시, 아침에 사서 보낸 김밥이 머리를 스쳤다. "네, 선생님. 그럼 점심은 먹이지 마시고 혹시 이따가 간식은 먹겠다고 하면 챙겨주세요."  


아이는 다른 친구들이 집에서 정성껏 싸 온 도시락과 김밥집에서 사 온 김밥 한 줄이 비교가 된 걸까? 자신은 제대로 된 도시락이 아니라는 게 부끄러웠을까? 꺼내기 부끄러워 차라리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둘러댄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니, 참 만감이 교차했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애써 점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김밥은 버려야 한다고 하니, 아쉽다는 미련만 보일 뿐이었다. 다행히 배가 아픈 게 아니니, 다시 남편과 나는 서둘러 도시락을 쌀 준비하기로 했다. 적합한 도시락을 찾을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칸막이가 있으면 세척이 번거로울 테고, 따로따로 통을 챙기기보다는 밴드가 포함된 게 좋겠다고 판단해 아이가 좋아할 만한 색깔로 구입했다.   


남편은 자신이 아이 도시락 준비를 맡겠다고 했다. 휴직 후 요리에 익숙해지는 중이기도 하고, 아이의 입맛을 잘 안다는 나름의 자신감이 붙어있는 상태라 나도 말리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메뉴보다는 남편이 아이가 좋아할 만한 메뉴로 잘 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도시락 싸기 첫날이 밝았다.


남편은 아침부터 쌀을 고루 씻어 밥을 앉쳤다. 아침부터 쿠쿠가 일하는 소리를 듣는 게 쉽지 않은데 달라진 아침 일상에 나도 깜짝 놀랐다. 계란을 서너 개 풀어서 (내가 평소에는 잘 안 쓰는) 소금을 팍팍 뿌리더니 계란말이를 정성스럽게 빚어냈다. 또 애호박과 새우를 올리브유에 볶아 살짝 감칠맛 나는 간장을 넣고 마무리하여 반찬을 뚝딱 완성했다. 짐짓 한 시간의 부산스러운 그의 움직을 나는 그저 등 뒤에서 바라만 봤다. 잘못 개입하면 그의 사기를 꺾어버릴 수도 있고, 내가 굳이 나서고 싶지 않기도 했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지켜볼 뿐이었다.


요리의 끝은 인증샷! 식탁에 정성스럽게 쌓은 도시락을 펼쳐놓고 남편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의 인생에 첫 도시락이 완성되었고, 아들은 슬쩍 쳐다보더니 이번엔 뭔가 만족스러운 듯 당당하게 도시락을 가방에 담았다. 부디 오늘은 아이가 잘 꺼내서 먹었으면! 문을 나서는 아이 등 뒤로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아주 평안한 하루가 흘렀다. 점심시간에 선생님 연락이 올까 핸드폰을 주시했지만 조용했다. 그렇게 아이가 하교하기만을 기다렸다. 오후 5시 힘찬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띠띠띠 띠띠띠띠 번호키를 누르더니 밝은 표정의 아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오늘 하루 어땠어? 도시락은 잘 먹었어?"


엄마의 속사포 같은 물음에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답했다.


"네~ 세 개 빼고 다 먹었어요. 숟가락 하나, 젓가락 두 개"


풉!!! 어디서 그런 농담을 배운 거야?! 아이가 자랑스럽게 꺼내 보이는 빈 도시락 통을 보며 나는 남편에게 이 역할을 온전히 위임해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들뜬 마음으로 쿠팡을 열었다. 일주일 동안 어떤 메뉴의 반찬을 싸야 할지 고민하며 하나하나 장바구니 담아 결제를 눌렀다. 그렇게 아이의 말은 남편의 역량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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