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리던 출근날이 다가왔다.
기다리던? 어쩌면, 긴장 속에 하루하루 X자를 그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엄마의 출근을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면서도 정작 "이제 엄마 3일 뒤면 출근이야!"라는 말에 휘리릭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엄마를 어딘가 멀리 보내야 한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는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도 보였다.
출근일이 되기 전부터 나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가장 최적화된 출근 노선을 그려보면서 가장 적합한 출퇴근 루틴을 세팅하는 것이다. 몇 시에 나가면 버스를 기다리지 않는지, 환승하는 과정에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감안해 도어투도어 몇 분 컷인지 파악했다. 버스로 출근하는 것이 가장 최단거리라 출퇴근 시간에 들을만한 팟캐스트가 뭐가 있는지.. 괜찮은 프로그램은 몇 개 미리 찾아두기까지 했다.
출근 당일, 아침 일찍 눈이 저절로 떠졌다. 순조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듯 기분이 좋았다. 이왕 일어난 거, 새벽 헬스를 다녀와서 출근준비를 할까? 순간 머리를 굴렸는데, 보통 운동을 다녀온 후에 지치는 느낌이 근무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니 운동 욕심은 서둘러 거뒀다. 아침마다 항상 큰 아이와 함께하는 모닝 루틴이 있어서 거실 테이블에 앉아 한적하게 아침 시간을 만끽했다. 오늘 첫날을 보내기 위해 기도로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큰 아이 학습지도 체크해 주면서 네이버 지도에서 버스 도착시간을 체크했다. 슬슬 옷을 갈아입고 필요한 가방을 챙겼다. 이제 곧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시간이 된 걸 확인하고 막바지 준비를 마쳤다.
아침에 서둘러 준비하는 엄마를 보는 아이들이 눈이 동그레 졌다. 그간 출근한 적도 많이 있었지만, 다시 오랜만에 서두르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 것 같다. 큰아이 작은아이 할 것 없이 유독 오늘따라 엄마를 더 불렀다. 여유롭게 답해주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점점 나갈 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자 이제 엄마 간다! 잘 다녀올게!" 남편과 아들 둘이 쪼르르 현관 앞에 서있자, 역할이 바뀐 것처럼 느껴져 어색함이 감돌았다. 우리는 그렇게 파이팅 열의를 표현하고 찐하게 포옹을 나눴다.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만나는 분들께 인사와 짧은 소개를 남기고, 노트북을 세팅하고, 필요한 업무의 인수인계를 받았다. 출근 전, 어렴풋이 파악한 내용을 토대로 실무에서 해나갈 아이디어들을 고민했어도 새로운 변수도 생기는 상황에서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더 많다고 느껴졌다.
'이제 긴 레이스가 시작되었구나'
이전의 내가 무리하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반면교사 삼아 제대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달라진 일상을 나답게 보내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1. 일상을 감사로 충분히 누려야겠다.
프리워커의 삶을 살다가 아주 오랜만에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조직 안과 밖을 고루 경험하며 느낀 장단점을 고려해, 다시 조직 안에서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 정말 충분히 감사함으로 순간순간 만끽하고 싶다. 조직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성장의 베네핏과,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기여감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 오랜 숙고 끝에 결심을 내린 과거의 나에게 누가 되지 않을 테니까.
2. 일에 있어서는 우물쭈물하지 않고 후회 없이 배우며 도전하며 성장하고 싶다.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몇 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북 계정을 만들어 아카이빙하고 있다. 2년 정도 되었을 때, 아카이빙 한 책이 무려 200여 권이었다. 그나마 북마크 한 내용이 있는 책들만 남겼으니 읽은 책만 하면 더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내공을 다져왔다고 생각한다. 불시에 어떤 주제에 대해 내가 보탤 수 있는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독서가 대화를 더 깊이 있게 만드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계속 책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아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아는 것을 잘 활용해서 더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 것이다.
3. 체력이 받쳐주는 일상을 살아내야겠다.
출근 전부터 가볍게 주 3회 헬스를 다니기 시작했다. 심각했던 번아웃의 기억이 떠오르며 수시로 불안감이 올라오자 과감하게 체력을 키워 미리 번아웃을 대비하자는 차원이었다. 그렇게 운동은 눈에 띄게 달라지는 변화를 이끌었다. 스스로 매일 운동이라는 해야 할 리스트를 달성했다는 뿌듯함이 가장 먼저 건강한 마인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 자연스럽게 체력이 좋아져서 일상에서 기운이 나는 일과를 보내게 되었다. 나는 본격적인 풀타임을 살면서 더 운동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렇게 마음가짐을 적고 보니, 첫 발을 뗀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가장 나답게 잘 보낼 수 있는 3가지가 아닌가 싶다. 출근한 지 일주일, 나는 이 당부를 매일 되새긴다. 그럼에도 퇴근하면 긴장이 풀려 아이들과 이른 잠이 들기도 하고, 책 읽을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해내려고 한다.
아자아자!
아이들에게도 일하는 엄마로서 줄 수 있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까.
정말 세상의 모든 워킹맘들을 존경하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