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엄마로서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감정의 파도에 춤을 추는 육아의 세계

by 진심어린 로레인


나는 또래 친구에 비하면 조금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귀여니 소설을 읽던 10대 시절에는 스무 살만 돼도 운명을 만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사회초년생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27살에 가정을 이뤘다. 그리고 하늘의 선물로 두 아들까지 네 가족이 함께 다이내믹한 일상을 살고 있다. 결혼 11년 차, 엄마가 된 지는 어언 10년이 되어가는 시간 속에 나에게 어떤 변화가 가장 컸을지 돌아보면 단연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물론 이미 장성한 자녀를 둔 분에 비하면 나의 육아 여정은 짧디 짧겠지만.. 엄마가 되고 보니 나에게 이렇게 다양한 감정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화려한 감정의 오케스트라를 만난 기분이다.


본디 극 F의 성향을 가졌기에, 평소에도 매 순간을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기억하는 스타일이다. 어쩌면 감정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능력이 나름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육아는 그런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를 더 사용하는 일 같아서 때론 덜어내거나 중립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어떤 육아가 더 건강한 모습일지,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육아는 무엇일지,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은 걸지 계속 질문해 본다.


육아의 과정은 내 마음의 문을 온전히 열어놓고 날것의 감정을 마주하는 연속의 과정이다. 극도로 행복감과 극도로 분노를 단 몇 시간 안에 느낄 수도 있기도 하다. 그런 경험을 할 때면 이렇게 감정의 널뛰기를 해도 되는 게 맞나? 싶을 때도 있는데, 더 성숙해지는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경험이겠거니 위안해 본다.


최근에는 퇴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며 초3 아이의 갓난아기 시절 뒤집기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조그만 체구의 아이가 스스로 낑낑대며 뒤집기를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영상 속 내 목소리만 들어도 내가 그 시절 아이로 인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내 들뜬 목소리와 아이를 바라보는 무한애정의 눈빛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어느덧 해는 지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하필 모자도 없는 옷이라 집까지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주차장에서 겨우 차를 갖고 큰 아이가 기다리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이는 많이 늦어진 시간까지 우산이 없어 도서관에 있었다. 중간중간 전화를 하면서 엄마와의 만나는 시간을 예견해 주었으나, 마지막 통화해서는 기다림이 무료한 지 예민해져 있었다. 드디어 아이를 만났고 기쁜 맘으로 아이를 차에 태웠다.


"아,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와요. 진짜 너무 오래 기다렸잖아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날 선 아이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순간 모든 긴장과 조급함이 화로 스위치되는 것을 경험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지 않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겠다고 서둘렀던 지난 시간에 대한 설움도 올라왔다. 단호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이 정도 비는 충분히 모자 쓰고 맞고 와도 된다고. 엄마는 너를 위해서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비 맞고 걸어서 차를 가지고 이동하느라 이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것이라고. 엄마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명확히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엄마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고, 그 에너지를 잘 사용해서 우리 가족이 더 좋은 시간을 보내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는 비에 젖은 옷처럼 축 늘어진 마음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 만에 이 아이로 인한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서운함과 속상함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나란 사람이 가진 엄마로서의 그릇이 한없이 초라한 종기그릇 같다고 여겨지는 건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데면데면한 상태로 30분쯤 흘렀을까? 안방에서 허무함을 달래느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에게 조용히 아이가 다가왔다.


엄마, 한 번 안아주고 공부하면 안돼요?


아이도 충동적인 말을 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먼저 엄마에게 다가온 아이에게 나는 또 한 번의 감정에 미숙한 엄마임을 증명하고 말았다. 속으로 네가 엄마보다 한 없이 낫다는 말을 하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는 뜨거운 포옹으로 어색한 감정의 잔재를 녹여버렸다.


아이와 함께 하는 수많은 날들에는 여러 감정의 악기들이 소리를 낸다. 기분 좋은 감정도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도 존재한다. 미술에서 양감이 존재하려면 밝은 컬러와 어두운 컬러를 쓰듯, 음악에서도 밝고 명랑한 톤의 장조와 어둡고 슬픈 단조를 오가며 아름다운 명곡을 완성시키지 않는가? 비중으로 보면 반반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 더 많이 차지할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뭐가 있을까? 불안감, 질투, 긴장감, 압박감, 괴로움, 우울, 서러움이 존재한다. 이는 비단 아이와의 관계를 넘어 아이를 둘러싼 환경에서 오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비교하는 상황이나 나의 의지 이상으로 육아 관련 개입을 하는 말들을 들을 때면 뭔가 마라톤을 계속 달려야 하는 답답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반대로, 환희, 기쁨, 재미, 동심, 사랑, 귀여움, 천진난만함, 행복, 벅찬 감정들이 마음을 풍부하게 한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충분히 시선을 아이에게 맞추고 지내다 보면 세상은 온통 재미있는 요소들이 가득하고,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과 감사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아이에게서 이 모든 것을 배웠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미 경험했을 것이지만, 다시 되새김질하듯 하나하나 배워나가면서 감탄할 때가 많다.


감정을 지휘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풍부해진 것,

그것이 요즘 내가 10년 가까이 육아하며 느끼는 삶의 변화이다.


얼마 전, 이혼숙려캠프의 독설적인 조언으로 통쾌함을 선물하는 이호선 교수님의 강연을 다녀왔다. 인생에서 우리의 삶이 활력을 갖기 위해서는 여러 기쁨의 요소를 과거, 현재, 미래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10개 이상 기쁨의 촛불을 켜놓고 있어야 거친 바람에도 꺼지지 않을 거라는 말에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우리 가족만의 아지트에 모였다. 영하의 기온에 아지트의 공간도 더 추워졌다. 아이들과 이불을 덮고 온기를 나누며 대화시간을 가졌다. 매번 주제를 정해주는 걸 좋아하는 일곱 살 난 둘째는 이번 주 감사하고 기대되는 것들을 이야기하라고 가이드했다. 덧붙여 다가올 주말에 있을 기대되는 것까지 5가지 이상 꼽아보라며, 가족들을 보챘다. 순간, 교수님의 메시지가 오버랩되며 이 쪼끄미가 이미 삶의 활력을 더하는 비밀을 깨우치고 있다니! 다시 한번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면 우울할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훗날 내가 생각하는 육아의 지향점을 떠올려보면, 나도 아이도 독립적으로 각자 원하는 길을 잘 찾아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 함께 하는 이 시기에는 그에 맞는 저력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이가 마주하는 세상에서 옳고 의미 있는 건강한 즐거움을 찾아 주체적으로 잘 분별하며 자신의 트랙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물론 재미 속에서 탁월함까지 발휘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건 욕심일 테고... AI가 등장하고 급변하는 시대에서 지금의 정답과 안정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 스스로 유연한 적응력을 갖고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 부모인 우리도 내일을 모르니, 어쩔 수 없이 우린 각자도생이야! 하며 서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데 에너지를 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10년 차 회고 끗,

이제 육아의 다음 챕터로 잘 넘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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