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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Sep 30. 2021

초보 부모들이 길에서 듣는 말. 말. 말

똑똑똑, 초보 엄마입니다.



두 아이 손을 잡고 밖을 거닐면, 혼자일 때는 모르는 경험을 하게 한다. 눈도 세 사람, 귀도 세 사람, 입도 세 사람 몫으로 온갖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걸어가는 목적 중심에서 3배는 더 풍성해진 세상이 된다. 온 사방 천지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은 쉬지 않고 나의 메신저가 되어준다.


“엄마, 저 아저씨는 왜 마스크를 안 썼죠?”

“크레인이 움직이고 있어요!”

“엄마! 앰뷸런스가 지나가요!”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낱낱이 읊어주는 아이들. 하나하나 맞장구쳐주고 싶지만 흥이 올라 동시 다발적으로 보고할 때면, “응응, 그러네, 맞다! 정말!” 등 추임새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게 된다. 아이들이 나에게 전해주는 세상만큼, 세상 사람들도 아이들을 통해 선뜻 나에게 말을 건네 온다.  


"아이들이 참 예뻐요.", "아구, 그 녀석 잘도 뛰어가네." 등의 칭찬과 기특함의 한마디도 있지만 매번 그렇지만은 않다. 십수 년 전 유행했던 영화 <놈. 놈. 놈>의 진짜 제목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이 표현대로 아이들과 밖에 나가면 좋은 말, 나쁜 말, 이상한 말 등 별의별 말을 듣게 된다. 다 좋은 사람이거나 다 나쁜 사람이라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보통은 날씨에 관해 아이의 옷차림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더운 날씨엔 “겉옷을 벗기지, 아이 땀나게”라고, 추운 날씨엔 “아이 양말을 안 신겼네? 옷이 너무 얇네” 등 심지어 “이러다 감기 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보는 눈이 많은 자리에서는 아이로 인해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싶어 안테나가 예민해진다. 때론 아이의 돌발행동이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게 될까 봐 아이에게도 엄한 목소리로 신신당부할 수밖에 없다.


육아 6년 차, 수많은 말을 듣다 보니 나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진짜 필요한 메시지만 새겨들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많은 훈계 섞인 메시지에 휘둘리다 보면 얼마 남지 않은 엄마로서의 자존심과 자신감마저 생채기가 나기 때문이다. 그간 아이들과 바깥을 거닐면서 들었던 말 중 기억 남는 몇 마디를 남겨본다.



1/ 맛없는 브로콜리를 애한테 주면 어떡해요?


이건 길에서 들은 말은 아니지만 문득 두 살배기 아이와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가 생각났다. 동시 예식이라서 1부 식순이 마치면 식사가 나오는 결혼식이었다. 저녁 시간이라 배고픈 아이를 떡뻥으로 달래며 식사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식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간단한 식전 메뉴가 서빙된 뒤 메인으로 스테이크와 가니쉬가 곁들여져 나왔다. 나는 스테이크를 썰기 전에, 먼저 아이에게 맛있게 구워진 브로콜리를 건넸다. 그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아이와 나의 대화를 듣던 한 아저씨가 말을 건넸다.


“아이고, 맛없는 브로콜리를 애한테 주면 어떡해요? 고기를 줘야지~”


순간 초보 엄마인 나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침착하게 그분의 말에 답했다. “저희 아이는 브로콜리를 좋아하거든요. 이제 스테이크 썰어주려고요” 그리고 말이 끝나자 브로콜리를 아작아작 씹어먹는 아이의 모습에 아저씨는 멋쩍게 자신의 성급한 무례함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그분의 지인도 그분에게 가벼운 책망을 던지며 “엄마가 어련히 알아서 줬겠냐” 면서, “브로콜리 잘 먹는 아이도 흔치 않은데…”라고 아이의 균형 잡힌 식습관에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그날의 당혹감이 어제의 일인 양 생생하게 남아있지만, 그래도 괜찮은 건 그 자리에서 바로 그분의 사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일이 그분에게도 조금은 자신의 생각이 다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한 일이 되지 않았을까?



2/ 아이는 보도 안쪽으로 걷게 하셔야 해요. 위험해요.


좁은 골목길에선 엄마 손에 붙들려있다가 보도블록만 발견하면 기회는 이때다 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경주마처럼 달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어디서든 자유롭게 뛸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런 제약된 환경 속에서는 아이들이 안쓰러워도 어쩔 수 없다. 그 대신 안전한 곳이라면 어김없이 뛰어도 좋다고 허락해준다. 하루는 인도, 그것도 철 울타리가 둘러진 인도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가는데 그 모습을 보던 한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이들한테 보도 안쪽으로 다니라고 하세요. 위험하거든요”


꽤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걸어오셔서 얼떨결에 알겠다고 감사하다고 답했다. 지나고 보니 굳이 지금 상황에서 주의를 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갸우뚱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좁은 골목에서 별다른 인도가 없이 갓길을 걸을 때가 많아 안전에 관해선 나도 무척 예민한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등-하원 길 내내, 엄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타이르다 보면 집에 들어서자마자 긴장이 풀려 녹초가 되는 게 일상이다. 이 모든 내막을 알리 없는 아저씨가 노파심에 건넨 한 마디였을텐데도 내심 서운함이 들었다. 그래도 일리 있는 조언이니 퇴근 후 돌아온 신랑에게도 동일한 당부를 전했다.



3/ 운동화를 신으셔야 죠.


신랑이 그 말을 듣자 자신이 최근 공원에서 어느 할아버지께 들었던 충고를 공유했다. 주말 아침, 아빠와 아이들 셋이서 공원에 나간 날이었다.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던 아빠를 어떤 할아버지께서 멀리서 지켜보고 계셨다. 기회를 보고 신랑에게 다가오셔서는 정중하게 충고를 건네셨다고.


“아이들이 이렇게 뛰어노는데, 아빠가 슬리퍼를 신고 나오면 어떡합니까, 혹시라도 아이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가야 할 텐데. 운동화를 신으셔야 죠!”


평소 신랑은 허허 웃으며 넘기는 스타일이라 어른의 충고에 “아, 네. 알겠습니다.” 하고 넘겼지만, 아이들 잘 챙기면서 같이 놀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아빠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고 핀잔을 들은 것 같아서 속이 쓰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비상상황을 대비해 항상 부모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당부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잦은 야근에 지친 남편이 주말 이른 아침부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원에서 에너자이저 둘과 놀아주는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짠해졌다. 그분 눈에도 그런 모습이 보였을까? 꽤 정중한 톤으로 말씀하셨다고 하지만.




아직은 나도 초보 엄마라서 실수투성이다. 매일 몰랐던 것들은 새롭게 배워가며 성장 중이다. 그래서 길에서 만난 낯선 분들의 조언이 필요할 수도 있다. 배워야 할 내용이라면 잘 필터 하여 새기지만, 과도한 간섭은 오히려 부모의 육아 자신감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부작용을 낳는다. 그렇기에 부디 부모들에게 충분한 응원과 격려, 아이들에게 애정 어린 시선이 먼저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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