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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Sep 27. 2021

이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고요?

똑똑똑, 초보엄마입니다.



아이가 벽에 낙서를 했다. 바닥을 쿵쿵거리고 싶은 욕구만큼이나 벽을 보면 낙서하고 싶은 욕구가 발휘되나 보다. 선물 받은 30가지 색연필을 통째로 들고 다니면서, 매일 색칠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스케치북이나 그림책에 그림을 그리다가도 성에 차지 않는지 이따금 책상에 낙서를 하는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엄마의 눈을 피해 창틀과 벽지에까지 알록달록 그림을 그려놓았다. 자기 전, 커튼 정리를 하다가 아이들이 만든 화려한 흔적에 나는 깜짝 놀랐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다스리기 위해 한숨을 크게 내쉬고, 아들 둘을 소환했다.


“누가 이랬어?”


둘이 서로 더 많이 그렸다며 변명을 하기 바빴지만, 막상 나는 이걸 어떻게 지워야 할지 막막해졌다.


“아, 집주인 아저씨가 싫어하실 거야. 이 집이 우리 껏도 아닌데..”


아이들을 혼내다가 속상함에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순간 아이는 놀란 토끼눈이 되어 질문을 이어갔다.


“엄마, 이 집이 우리 집이 아니에요?”

“응, 우린 잠시 빌려 사는 거야”

“왜요?”

“필요하니까. 이 집의 주인아저씨는 따로 있어”

“그럼 그 아저씨는 어디 살아요?”

“집이 또 있나 봐, 다른 곳에 살면서 이 집을 빌려준 거지”

“그럼, 지난번 계단 집은요?”

“그 집도 우리 집이 아니었어”


아이는 생전 처음으로 자가와 전세라는 개념을 획득하곤, 혼란스러운 듯 질문을 퍼부었다. 한참 뒤에야 물티슈를 꺼내 엄마를 따라 열심히 창문을 닦아 냈다. 다행히 창문은 깨끗이 지워졌고, 벽지는 지우개로 열심히 닦아낸 결과 약간의 자국만 남기고 지울 수 있었다. 그 뒤로 며칠이 지났지만, 아이는 이따금씩 아직도 우리가 전세에 살고 있는 것인지 확인차 질문을 던졌다.


아이에게 이런 답을 해주는 게 맞을까? 고민하면서도 나는 아이의 질문에 우리 집의 사정을 솔직하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경제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는 우리가 이용하는 도서관이나 우리를 지켜주는 경찰서, 소방서가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세금의 개념을 익히고, 아빠가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이유가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우리 가족을 위해 돈을 번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소아과 다녀오는 길에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나눈 대화에 웃음이 났다.


작은 아이 : “아빠는 우리 안 데리러 와요?”

큰 아이 : “응, 회사 가셨지, 아빠는 회사에 가셔서 돈을 벌어오셔야 해. 그래야 우리가 세금도 내고, 밥도 먹고, 저축도 하고, 필요한 것도 살 수 있는 거야.”


큰 아이는 작은 아이가 이해할 수 없는 돈의 세계를 명확하게 전달해내고 있었다. 아이의 경제 공부가 이렇게 시작되는 거구나 싶어서 내심 기특했다.    


최근 읽게 된 <내 아이와 처음 시작하는 돈 이야기>란 책에서 저자 론 리버는 돈에 대한 대화는 곧 가치에 대한 대화라고 말한다. 돈이란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수록 아이에게 필요한 균형적인 시각과 가치관을 적립할 수 있다. 용돈은 참을성에 대한 문제로, 자선은 관대함의 문제로, 일은 인내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바라는 것과 필요한 것의 차이를 고려하여 협상하는 것은 검약이나 신중함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이 모든 대화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현실에 감사함을 가지고,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가치 있는 것에 돈을 현명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스쳐 지나가는 대화였지만, 이를 통해 아이를 둘러싼 수많은 정보의 보호막 중 한 칸을 걷어낸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에게 숨기고 싶은, 약간은 부끄러운 주머니 사정을 공개하기 위해 나도 용기가 필요했다. 막상 아이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니, 진짜 우리 집을 기대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아이와 내가 행복한 공간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진정한 우리 집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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