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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Sep 07. 2021

비 오는 날, 천사를 만난 아이들

똑똑똑, 초보엄마입니다.



오후 4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급하게 아이들을 데리러 집을 나섰다. 하늘엔 거뭇거뭇한 구름이 가득하다. 곧 비가 올 것 같은데? 집에 다시 가서 차로 하원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날씨 앱을 보니 6시부터 비구름이길래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두 아이가 다른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둘째 먼저 하원을 시켰다. 첫 번째 어린이집을 나서자마자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뚝뚝.. 비를 맞은 아이는 비가 온다며 신나 했다. 첫째까지 하원 시켜 집으로 가려면 서둘러야 해서 둘째 아이의 걸음을 재촉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비를 맞을만했다. 첫째의 어린이집 앞에 도착해서야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이 나서 어린이집을 나서던 첫째는 차를 갖고 오지 않은 엄마에게 푸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나올 때 비가 안 왔는데, 여기 오니까 비가 오더라. 모처럼 너희들이랑 비를 맞으면서 집에 가는 거야! 이런 낭만이 어딨니?”


내 마음도 아이와 같았지만, 아이에게 이 상황이 충분히 로맨틱할 수 있음을, 즐겁게 생각하자며 애써 분위기를 띄웠다. 그래도 아이들을 비 맞게 할 수는 없는 터. 쌀쌀한 아침 등교에 입혔던 면남방을 아이들 얼굴에 씌워 긴소매로 단단히 묶어줬다.


“자 이제 됐어! 우리 집까지 재밌게 가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그때, 갑자기 누군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잠깐만요!”


뒤돌아보니,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집이 가까우세요?”

“아뇨. 멀어요”

“아, 그럼 이 우산이라도 가져가세요! 좀 낡긴 했지만”


아저씨는 차로 태워주려고 했던 것 같았으나 집이 멀다고 하니 생각을 바꿔, 자신이 쓰고 있던 네이비 장우산을 나에게 건넸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감사해요~”

“가져가세요! 비 맞지 마시고요. 아이들도 있는데. 저는 우산이 많이 있어요~”

“그럼 어디 사세요? 제가 돌려드리러 갈게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우산을 억지로 나와 아이들에게 들이밀던 아저씨는 그렇게 빗속을 달려 저 멀리 주차된 차에 올라탔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아이들도 놀라움에 말이 없어졌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그 아저씨가 우리를 봤던 것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 둘 손을 잡고 비 맞고 가는 모습이 안쓰러우셨을까? 그분의 선의에 우리에게 우산이 생겼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늘에서 천사가 빗줄기를 타고 내려와 우산을 건네준 것 같았다. 그것도 우리 셋을 포근하게 감쌀 만큼 넉넉한 우산을.


“진짜 감사하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첫째 아이가 드디어 입을 뗐다. 그 첫마디가 감사 고백이었다. 아이의 말에 나도 적극 동의하며, 저분은 정말 천사 같다고 이야기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천사가 이렇게 비와 함께 나타나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건가? 우리 지금의 감사함을 잊지 말고, 우리도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신발장에 세워놓은 우산을 한동안 쳐다봤다. 경황이 없어서 그분의 얼굴이나 인상착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 그 아저씨 파란 조끼 입고 계셨어, 공사하는 아저씨 같던데?”


수리를 하는 아저씨들이 흔히 입는 조끼를 보고 아이는 아저씨의 직업을 유추해보았다. 근처 사시는 분이거나, 가게를 하는 분일 수도 있겠지만, 낯익은 얼굴은 아니었기에 다시 뵐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따뜻한 마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이렇게 글로 남긴다. 낡은 우산일지라도 길가는 타인에게 건네주고, 자신은 빗속으로 뛰어가는 그 모습을 말이다.


보통의 일상을 사는 오늘이 더 특별해지는 것은, 이런 천사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의 천사가 되어 함께 사는 세상을 아이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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