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혼집은 상가 건물 3층의 조그만 투룸이었다. 오랜 자취 경력이 무색하게도 결혼으로 새로 얻은 보금자리는 소꿉놀이 재미가 쏠쏠했다. 전세 계약을 연장할 즈음첫 아이가 태어나며, 둘만의 낭만적인 집은 하루가 다르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가는 아이에게맞춰진 집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대한불편함도 크게 느껴졌다. 아기띠를 한 채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괴력을 발휘해야 했고, 겨우 걸음마를 뗀 아이가 산과 같은 계단을 손으로 기어가려고 할땐 저지해야 했다. 그렇게4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 이사를 결심했다.
새로 이사 갈 집은 옆 옆 동네에 위치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3층 빌라였다. 이사의 설렘도 잠시,만삭의 몸으로 이사를 준비하던 중에 걱정이 하나 생겼다. 동네도 바뀌고, 집도 바뀌고, 이웃들도 바뀌는 상황에서 출산보다 더 큰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바로층. 간. 소. 음.
당시 뉴스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한 사건사고들이 쏟아지듯 보도되었다. 심지어 칼부림까지 났다는 기사에, 세상이 점점 삭막하게 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이런 상황에서 곧 태어날 아들까지 두 아들을 키울 수 있을지막막해졌다. 우리 아이들이 의도치 않게 이웃들에게 폐를 끼쳐 불만이 생기면 어쩌나 두려웠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밤에 잠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둘째가 태어나고, 새로운 우리 집은 두 아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대담해진 첫째는 슈퍼맨처럼 소파에서 뛰어내리는 등 예상치 못한 행동을 했고, 울보 둘째는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멀리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돌발 행동에 마음을 졸이던 나는 죄송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웃집과 아랫집 현관문 고리에 과일봉지를 걸기도했다.그런데도 이웃과의 왕래가 거의 없고, 심지어 얼굴도 잘 모르기 때문에 굳게 닫힌 현관문으로 느껴지는 이웃의 존재는 차갑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층간소음이란 소셜 이슈를 방관하고 싶지 않았다. 광고기획자로서 매번 브랜드 문제를 분석하고 최적의 솔루션을 고민하던 내가 한번직접 해결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는 이웃관계를 회복시키고 적극적으로 소통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무엇보다 나도때론격려받고 싶고, 도움받고 싶은 초보 엄마이기 때문에. 굳게 닫혀 차가운 기운을 풍기는 ‘현관문’을 소통을 위한 매개체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았다.
엄마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여러 의견을 모았다. 세상이 무서워져서 혹시라도 아기가 살고 있다는 게 범죄의 표적이 될까 봐, ‘아기가 자고 있으니 초인종을 눌러주세요’라는 스티커 붙이는 것도 조심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그래서“층간소음이나 이웃 간의 불편함을 덜기 위한 소통을돕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그렇게 디자이너인 지인과 함께 아이데이션을 거듭하면서 자동차에 붙이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생각해냈다! 초보 운전자가 초보 엄마, 초보 아빠가 되는 것처럼. 상시로 붙어있는 도어사인(스티커)보다는 쉽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문걸이 형태의 이웃 간의 편지지를 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