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살아낸 줄 알았다
“저, 2주 정도만 일할 수 있을까요?”
대학 입학을 몇 주 앞둔 나는 대학생인 언니 자취방에 잠시 머물며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중이었다. 수차례 거절을 맛보고 포기하려던 찰나, 우연히 전봇대에 붙은 피시방 구인 광고를 보았다.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허름한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어두컴컴한 분위기기 꺼림칙했지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의 소탈한 첫인상에 마음이 놓였다. “내일부터 나오세요." 감사하게도 사장님은 초단기 아르바이트를 받아주셨고, 갓 스무 살 청년인 나는 첫 통장에 수입이 찍힐 기회를 잡았다.
아르바이트 시간은 오후 4시부터 8시. 피시방에선 꽤 여유로운 시간대로 업무 역시 단순했다. 손님이 자리를 잡으면 물을 세팅하고, 간식 주문이 들어오면 손님 컴퓨터에 가격을 추가해 서빙하고, 손님이 나가면 계산 후 컴퓨터와 책상을 닦는 게 다였다. 주로 계산대에 한가로이 앉아 모니터를 보며 오늘 매출이 어느 정도 나올지, 밤새 게임 중인 손님이 누군지 확인하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초보 청년은 쉬운 일도 미숙하다. 익숙하다가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꼭 하나둘씩 생겼다. 매일매일 시트콤을 찍는 것처럼. 주인공으로는 ‘아저씨와 꼬맹이’가 등장한다. 당시 나는 사장님을 '아저씨'라 불렀고, 사장님은 나를 '꼬맹이'라 불렀다. 하루는 계산 중에 손님의 컴퓨터 번호를 잘못 눌러 다른 손님의 컴퓨터를 꺼버렸다. 한창 게임 중인 컴퓨터를 끄는 건 정말 치명적인 사고다. 황당한 손님은 크게 항의했고, 당황한 나는 유구무언이 되었다. 그때 아저씨는 대신 사과를 전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얘가 아직 꼬맹이라 미숙했네요. 서비스 시간 많이 넣어 드릴게요." 이제 나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설픈 어른임이 인증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어느 날은 계산대에 앉아 있는 내게 한 남학생이 음료 두 개를 계산하더니, 나에게 하나를 건넸다. 조금 뒤엔 자신의 번호가 적힌 쪽지를 놓고 갔다. 어리둥절한 나는 거절 방법을 고민하다 늦게 출근한 아저씨께 털어놓았다. 그날 아저씨는 졸지에 나의 삼촌이 되었다. “제 조카예요. 며칠 뒤 떠날 거니 맘 접으세요. 손님.”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나는 언제쯤 어른의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빡빡한 청년 자영업자의 사정을 알 리 없던 나는 종종 다 큰 꼬맹이처럼 굴기도 했다. 출출할 때면 파는 간식을 먹겠다고 노래를 불렀고, 고작 4시간 일하면서 야식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사장님은 그런 나를 막둥이 동생 타이르는 큰 오빠처럼 핀잔하면서도, 슬쩍 내가 제일 좋아했던 오다리를 건네주셨다.
그렇게 청소년 꼬리표를 갓 뗀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아저씨 덕분에 순항할 수 있었다. 고작 십몇만 원 버는 알바였지만, 마음은 풍족했다. 그 후, 나는 고향을 멀리 떠나 대학에 입학했다.
하루는 전화가 걸려왔다. 고향 피시방 사장님의 전화가 어쩜 그리 반가운지. 대학 생활에 잘 적응했냐는 말에, 다들 영어를 잘해서 부담된다는 둥 한참 너스레를 떨었다. 아저씨는 전화 끝에 기숙사 주소를 물었고, 일주일도 안 되어 두툼한 택배가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토익책 풀세트와 카세트 플레이어, 그리고 내가 피시방에서 즐겨 먹던 오다리 열 봉지가 들어있었다. 포스트잇 한 장에 ‘꼬맹이 파이팅!’이라고 적혀있었지만, 아저씨가 진짜 남기고 싶었던 말은 학기가 끝날 즈음 우연히 발견한 그의 미니홈피에 쓰여있었다.
<갓 스무 살이 된 꼬맹이에게>
십 년 뒤쯤이 궁금해지는 꼬맹이.
처음부터 담아야 할 것과 담지 말아야 할 것을 미리 정해두지 말 것.
사람들이 말하는 생각 속에서 꼬맹이의 것들을 잊어버린 채
남들의 생각이 네 것인 것처럼 처음부터 선을 그어 놓지 말길.
꼬맹이가 아저씨 나이가 되었을 때는 아저씨보다
더 크고 더 넓은 가슴으로 더 넓은 무대에서 더 많은 사람과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그런 어른이 되기를.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망설일지언정 포기하진 않기를.
나의 청년 첫해, 이제부터 삶을 직접 주도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현실을 잘 모르는 미숙함 속에서 그 혼란을 먼저 겪어가고 있는 30대 청년인 사장님의 존재는 나에게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그저 스치는 인연이지만, 아저씨는 10년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대로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당시의 아저씨보다 나이를 더 먹은 지금, 아저씨의 편지를 다시 꺼내 본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아저씨의 기대를 충족했을까?’
지금 나는 사회생활 10년 차인 30대 중반의 경력 청년이다. 그사이 결혼을 했고,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최근 우연한 기회로 20대 청년들 멘토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미 겪어온 시기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초보 청년’들을 만나보니, 그때의 아저씨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래서 더 애틋한 마음으로 키다리 아저씨에게 받았던 응원과 격려를 오늘의 청년 후배들에게 전해 본다.
앞서간 청년이 뒤따라오는 청년의 징검다리가 되어준다면,
망망대해처럼 불안한 청년의 때를 든든하게 헤쳐갈 수 있으리라.
이 글은 좋은 생각 주관 <제6회 청년이야기대상> 장려상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