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벗어놓은 양말의 의미
부부라는 다름의 시너지
오늘도 어김없이 방 청소를 하다보면 세탁기에 넣지 않은 남편의 양말이 문 귀퉁이에 널브러져 있다. 출퇴근 없이 집에서 일하는 내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신랑을 배려해 최근 들어 더 집안일을 많이 맡고 있지만, 엄연히 서로가 스스로 기본적인 일을 챙겨야 한다. 그래야 상대에게 스트레스가 덜 쌓이는 거니까.
처음엔 신랑에게 양말을 벗자마자 세탁기에 넣으라고 좋은 말로 타일렀다. 그러나 그의 습관은 단번에 고쳐지지 않았고 그 후로 나는 양말을 볼 때마다 무척 예민해졌다. 출근한 남편, 등원한 아이들을 뒤로하고 집을 돌아보면 어제 신은 신랑의 양말이 매번 새로운 곳에서 발견된다. 하루는 아이들 방 입구, 하루는 세탁실 문 앞, 하루는 화장실 앞…
그의 양말을 발견하면서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불을 외마디 비명으로 삭혔다.
"아 또 야? 이게 그렇게 어려워?"
신랑과의 관계가 괜히 이 양말 하나에 위태로워졌다. 순식간에 100점짜리 남편이 0점으로 추락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랑을 미워하는 마음도 점점 커지는 것 같아 편하게 웃으며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거북해졌다. 온전히 이것은 신랑 잘못, 신랑 탓으로만 여겨졌고, (솔직히 적자면…) 나는 더 오만하게 신랑을 미워했다. 집안일을 할 때면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
그날도 나는 남편의 양말을 집으며 내 당부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상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속에서 "이 양말은 신랑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증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상태로 양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곱씹어도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게 의아했지만, 그 의미는 단번에 내 모든 부정적인 센서를 잠재워버렸다.
실제로 나는 종종 들려오는 갖은 사건 사고 뉴스를 들을 때마다 불안감에 휩싸였다. 최근엔 과로사로 삼 남매를 둔 아빠의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고. 어쩔 수 없는 교통사고가 빈번한 걸 보면서 죽음은 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안전한 귀가가 하루의 목표가 된 것처럼, 오늘도 우리 가족 모두 안전하게 돌아오길 기도해왔다.
매일 밤 무사히 신랑을 마주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 그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수고하고 돌아온 남편을 위해 내가 이 양말 하나 정리하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날의 깨달음은 내 안에 불타는 화를 단숨에 꺼트린 찬물처럼 내 삶을 제대로 바꿔 놓았다. 그 뒤로 나는 그의 양말을 종종 발견하더라도 더 화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신랑에게도 스리슬쩍 내 마음을 고백했다.
"나는 이제 당신 양말을 정리하는 게 불쾌하지 않아. 그러니까 할 수 있으면 세탁기에 넣고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해줄게"
신랑은 무슨 말이냐며 뜬금없는 나의 고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내면의 고백을 꼭 하고 싶었다.
부부로, 가족으로 산다는 건 뭘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어떤 것일까? 여러 질문들이 이번 양말 사건을 계기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하나의 팀]이라는 단어로 정리되었다. 어쩌면 나의 무심코 했던 행동들 역시 신랑의 눈에 아니꼽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행동 하나하나를 오해해 꼬투리 잡지 않고 조용히 덮어주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그렇게 나는 아내로서 한 단계 더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