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가 잘잘 흐르는 미카도 실크 벨라인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부 입장을 하던 날이 엊그제처럼 생생하다. 어느덧 9년 차 아내이자, 일곱 살 네 살 두 아들의 엄마인 나는 매일 장난감으로 온통 흐트러진 집안과 설거지 거리들이 켜켜이 쌓인 싱크대를 애써 외면하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내는 워킹맘이다.
결혼식 전날까지만 해도 결혼 후의 내 모습이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소위 유리천장이라는 말처럼 내 미래가 뿌연 유리로 덮인 것 같아 막막했다. 버진로드에 발을 내딛음과 함께 싱글로서 자유로운 삶이 영영 끝날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러나 막상 허니문에서 돌아와 보니, 아내와 며느리라는 이름표가 덧붙여진 거 외에 내 일상은 여전히 예전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두 아들의 엄마라는 막중한 이름표가 덧붙여지면서 나다움의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나의 존재감, 일을 할 수 있는 돌파구를 놓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어떻게 엄마와 아내를 겸하고서도 꿈을 좇아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었을까? 버거운 일상 속에서도 지난 시간 동안 쌓인 커리어들은 대단한 훈장처럼 나 스스로도 뿌듯하게 느껴진다. 그 과정에서 일등공신은 바로 남편이었다. 그는 가장 깊은 고민도, 시시콜콜한 농담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베스트 프렌드이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일으켜주는 페이스 메이커요, 전쟁처럼 긴박한 육아 현장에서 든든한 전우이다.
그런 그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우리가 부부로서 서로의 태엽을 맞춰가는 과정을 남겨보려고 한다. 부부로서 인연이 되기 위한 준비부터 꼭 필요한 에티켓까지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내가 만난 지 세 시간 만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
인터넷 소설이 한창이던 십 대 시절, 나 역시 그 판타지에 빠져 내 인생을 상상해보곤 했다. 스물다섯에 결혼한다는 둥 철없던 그때의 꽤나 진지했던 모습은 지금도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아쉽게도 스물다섯 살에는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하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혼자 보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1년간 오로지 혼자 보내면서 인생의 도약을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1. 내면의 상처 회복하기 : 알게 모르게 쌓여왔던 내면의 상처를 점검해야 한다. 특히, 관계에서 받았던 상처를 마주하며 하나씩 내 연약함을 보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온전한 마음, 건강한 내면으로 회복해야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 역시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2. 나란 사람을 잘 파악하기 : 내가 누구인지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인지 알아가는 것은 내 인생이 더 단단하게 한다. 더 나아가, 누구와 호흡이 잘 맞는지, 어떤 사람이 내 인생에 밸런스를 잡아줄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나는 자연스럽게 어떤 배우자를 만나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까지 손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비슷한 전공으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음악을 좋아하고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 할 수 있는 언어가 비슷해서 해외여행이나 생활을 꿈꾸는 사람 등등. 언젠가는 그런 만남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매일매일 함께 하는 것만으로 웃음이 가득한 가정.
서로의 꿈과 도전을 가장 먼저 지지해주고 언제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부부.
스물여섯의 해가 시작되고 첫 주말, 실은 소개팅 하나가 미리 잡혀 있었다. 그런데 그사이 내가 정리한 가정과 부부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뻔한 결과가 예상되어 주선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취소했다. 대신 오랜만에 학교 선배 언니와 티타임을 가졌다. 연애 이야기를 하던 중 언니가 내 이상형을 물었고, 나는 구구절절 이야기하면 깐깐해 보일까 봐 아주 중요한 일부만 이야기했다. ‘성품이 좋은 사람, 내 존경할만한 사람?’ 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갑자기 “앗! 촉이 왔어! 왠지 딱일 거 같아!” 일사천리로 그와의 소개팅을 추진했다.
어리둥절했지만 언니의 촉이 기대가 되면서 한번 만나보기로 했다. 일주일 뒤, 2013년 1월 19일 설레는 맘으로 집을 나섰다. 버스에서 내려 잠실 석촌호수 근처 약속 장소를 향해 가는데 바로 몇 걸음 앞에 키가 큰 말끔하게 회색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자의 직감으로 ‘저 사람이구나’ 단번에 알아차렸고 50미터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며 우리의 만남을 위해 기도했다. 어떤 만남이 될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라면 명확히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라며...
저녁 메뉴는 나시고랭과 미고랭이었다. 나는 몇 년 전 교회 청년부와 다녀온 인도네시아 선교 이야기를 꺼냈다. 그도 청소년부터 친구들과 다녀온 중국, 터키 선교 여행 나눠 주었다. 서로의 비슷한 경험이 신기하기도 하고 공감되면서 우리의 대화는 더욱 깊어졌다. 무엇보다 대화 내내 나는 속으로 나만의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기 위해, 이야기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바꿔나갔다. 세 시간 정도 이어진 대화로, 그는 나와 같은 경영을 전공해 분야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타고난 긴 손가락과 어린 시절부터 교회 생활을 통해 피아노와 기타, 드럼을 치며, 성실한 신앙과 온화한 성품을 가진 남자였다.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첫 만남을 슬슬 마무리하면서, 나는 이 자리가 예비된 만남이자 이 사람이 나의 배우자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미리 소개팅을 한다고 귀띔을 해둬 결과를 기다리는 엄마와 통화를 했다. 확신에 차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 결혼할 남자를 만났어'라고 말해 집안이 뒤집어졌다. 오래 기다리던 내 님을 드디어 만났다 생각하니 정말 기쁘고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