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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자 Mar 04. 2022

유치원생이야

아이가 설레는 건지 내가 설레는 건지 알 수 없는

유치원 첫날...

잘 지내겠지 싶다가도

버스는 잘 타고 갔나

계단에서 잘 넘어지는데 오늘은 잘 올라갔을까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을까

우유 먹다 흘리진 않았을까

밥 안 먹는 아이 먹여줄 사람도 없는데 한 숟가락은 먹었으려나..

이제 낮잠시간도 없는데 졸려서 선생님한테 짜증 내진 않을까..

화장실 가고 싶은데 말 못 하고 실수하면 어쩌나...

별의별 시답잖은 생각이 하루 종일 일손을 흩트려놓는다.


나도 여섯 살엔 유치원을 다녔고, 일곱 살엔 속셈학원을 다녔다.(유행이었나? 한때는 주산 알 좀 튕겼는데...)  

무조건 어른과 함께 등원해야 하거나 통학버스를 타는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꽤 먼 길을 골목골목 걸어 유치원에 혼자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

개에게 물린 적도 없으면서 유독 개를 무서워했었던 나는

유치원 가는 길에 가끔 등장하던 동네 개를 어지간이 두려워했다.

하루는 엄마에게 유치원 갈 때 쫓아오는 개가 무섭다고 하니 같이 놀고 싶어서 쫓아오는 거니까

뛰어가면 더 쫓아올 테니 무서워도 천천히 걸어가라고 했다.

그 말에 멍멍이 방울 소리만 들어도 무서워하면서도 꾹 참고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저 달달한 냄새가 나는 꼬맹이랑 놀고 싶어 따라다녔던 동네 개는 괜히 억울했으려나.


그렇게 여섯 살짜리도 동네를 혼자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차에 태워 유치원 안까지 들여보내도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이다.  

다들 그렇게 산다며 위안을 삼지만

아직 밥도 혼자 못 먹고 옷도 제대로 못 입는 꼬맹이를

아침 출근시간부터 퇴근시간까지 하루 종일 꼬박 맡긴다는 게 맘 편한 일은 아니다.


어찌어찌 오후쯤 되었을까..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직 이름도 잘 모르는 새 담임선생님 전화다.

어린이 집이나 유치원에서 전화가 올 때는

첫마디가 "아무 일 없고요, 어머니~!"다.

무탈하면 전화 올 일이 없지만 작은 사건사고가 있으면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마디가 "아무 일 없고요~"가 아니다. 왠지 겁이 난다.

상냥한 담임 선생님은 점심시간에 있었던 작은 소동을 부지런히 이야기해 주셨다.

역시나 밥이 문제로군...


여섯 살이 되더니 부쩍 반항의 빈도와 세기가 발달한 우리 딸.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아니야!, 싫어!, 안돼!....이다;

점심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밥을 먹고 모두가 자리를 뜰 때까지 숟가락 한 번을 안 들고 있자

밥을 먹자고 권하는 선생님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것.

사실 요즘 조금만 제 행동을 나무라는 것 같은 낌새만 있다 싶으면

울음 터뜨리기로 선제공격인 딸아이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꺽꺽대며 서럽게 우는 낯선 아이를 보며 선생님은 또 얼마나 당황했을지

안 봐도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첫날부터 아이가 울어대니 선생님은 마음이 쓰인 모양이다.


퇴근하고 가니 쪼르르 달려와서는 오늘 선생님한테 혼났다며 응석이 섞인 고자질이다.

으이구 그것도 혼난 거라고... 샘한테 반말하고 대든거(?) 다 알거든...!


아이가 집에 제 것을 빼앗아갈 라이벌(?)이 없어 그런지

다 위해주고 아껴주는 어른들만 있어 그런지 점점 버릇이 없어져가는 느낌이다.

물론 내 눈에는 어떻게 해도 예쁜 내 아이지만

예절 바른 아이로 다른 사람 눈에도 예뻤으면 하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똑같겠지...

큰소리 내지 않고 엄하게 하지 않으면서 바른 아이로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을까.

아이보다 부모로서 나의 성장이 아쉽다.


내일은 밥을 세 숟가락 먹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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