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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자 Jun 07. 2022

머리하는 날

연중행사



누군가는 새로운 스타일링으로 리프레쉬할 수 있으니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한번 가면 서너 시간은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한다는 고난 때문에 미루고 미루고 미루게 되는 미용실 가기.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두어 달에 한 번은 꼬박꼬박 파마며 염색을 하러 미용실에 다니며 수년 동안 변함없는

파마머리를 유지하시는 걸 보면 그저 대단하다 싶다.



앞뒤로 납작해서 머리통 모양에 자신이 없다 보니 해보고 싶어도 못해봤던 쇼트커트.

인생에 한 번은 배구선수 마냥 멋있게(?) 쇼트커트를 해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는데 늘 망설이다

더 늙기 전에 해보자는 마음으로 호기롭게 등허리까지 오는 머리를 단박에 쇼트커트로 잘랐던 재작년.

주변에선 갑작스러운 변화에 마치 사연 있는 아줌마가 된듯했지만 스스로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어찌나 가볍고 시원하고 간편하던지!


신나는 마음도 잠시 한 달쯤 되니 금세 지저분해지는 머리.

아뿔싸 그 짧은 머리를 관리하려면 한두 달에 한 번은 계속 미용실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뻔질나게 미용실에 가야 된다는 생각에 그 길로 다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딱히 파마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머리를 기르기만 하면 된다면

미용실 갈 일이 없을 텐데 애매하게 곱실거리는 머리는 그야말로 매직 같은 매직 스트레이트 펌이 풀리고 나면 스멀스멀 제멋대로 꼬부라져 어느새 손질 안된 가발처럼 변해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보자 하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고데기로 수박 겉핥기 하듯

앞머리와 겉 머리만 대충 펴서 덮어본다. 그렇게 또 한두 달.

어느새 날씨가 더워졌다.

머리는 더 지저분해지고 이대로는 안될 것 같다. 이대로 여름이 되면 아침에 기력을 짜내어 머리를 손질해봤자 여름의 습한 공기는 금세 내 곱슬머리와 놀아날게 뻔하다.

장마철 파마만은 피하고 싶어 등 떠밀리듯이 결국 미용실을 예약했다.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단골 미용실이 없다.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스타일링을 해주는 단골 미용실이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언제 갔는지 가물가물할 때쯤 미용실에 가면 늘 헤어디자이너 샘들이 처음 묻는 말은


"언제 마지막으로 파마하셨어요?"


항상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어버버 하거나 기억이 안 나는데요,,, , 하고 만다.

이번에는 그나마 그 질문이 미리 생각나서 언제 머리를 했었나 폰 사진앨범의 도움을 받아

기억을 더듬어 본다.  작년 3월.

지금이 5월이니 1년이 더 지났다.


금요일 반차를 내고 더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 생긴 동네 미용실에 갔다.

처음엔 병원을 간 것처럼 낯선 긴장감. 잠깐 동안의 대기시간 동안 맑은 날씨의 창밖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둥실둥실 괜히 설렌다. 역시 남들 일할 때 노는 게 더 즐겁다.


배정된 헤어디자이너가 다가와 머리를 살펴보더니 한마디 묻지도 않고 머리 한 지 1년 정도 되셨네요 한다.

미리 준비해온 대답이 허무하면서도 믿음이 가는 순간이다.


무방비 상태로 샴푸의자에 누워 남의 손에 의해 머리를 감으며 천국이 따로 없다 싶다.

그래 일 년에 한 번쯤은 올만하네.

오늘 하루는 즐겨야지.


늘 컴퓨터 화면을 보고 사람들과 대화에, 육아에 머리속이 시끄러운 날들이라 그런걸까

낯모르는 많은 사람들 틈에 않아 거울을 멍하게 보고 앉아있는 이 시간이

왠지 혼자 있는 것 같은 이 적막한 기분마저도 반갑고 편안하다.  


약을 바르고 기계를 돌리고 또 머리를 감고 말리고 약을 바르고 감고 말리고 펴고...

머리를 세 번쯤 감았을까... 세 시간째 거의 끝났겠지...? 하고 있는데

디자이너가 머리를 살피며 시간 있으시면 한 시간쯤 더 줄 수 있냐고 한다. (네???)

뭔가 뜻대로 되지 않았는지 죄송하다며 일부분을 다시 해준다나....
그래 그러시라고 했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사람이 A/S 받겠다고 다시 올 수는 없으니.

마음껏 멍 때리는 날이구나.

네시간만에 비단처럼 찰랑거리는 머리를 달고 미용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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