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가한 날.
회사에 들른 퇴사자분이 지나가며 안부차 묻는다.
요즘 일 바빠요?
밀물 같던 일이 스르르 빠지고 난 후라 나름 한가한 편이었지만
한가한 티는 내고 싶지 않기에 뭐 그럭저럭이요, 하고 기계적인 답을 내놓는다.
벌써 10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월초 월말은 바쁘다는 것 외에는 업무량을 짐작할 수가 없다.
어떤 날은 너무 일이 많아 두피가 지끈지끈하도록 바쁘고
어떤 날은 일이 없어 메일 창만 바라보며 가지 않는 시간을 원망한다.
뭐라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여 딴짓도 못한다.
그런날은 하루가 어찌나 긴지 업무 좀 있었으면 하는 세상 바람직한
회사원의 마음이 된다.
일이 적당히 있을 땐 하나하나 미션 클리어하듯 일을 처리하다 보면
시간은 힘들이지 않고 흐르고,
뿌듯하고 보람 있는 하루의 완성과 함께 퇴근시간이 된다.
일이 너무 많은 시기가 오면 누가 꽁지에 불이라도 붙여놓은 것 마냥 마음이 급하다.
마음이 급하다고 일이 빨리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시간에 쫓길 때면
혈압이 오르는지 얼굴을 붉어지고 심장은 두근댄다.
균형 따위 찾아볼 수 없는 들쑥날쑥 업무패턴.
마치 세탁기에 돌린 오리털 잠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깃털이 이리저리 쏠려 어떤 부분은 잔뜩 털이 뭉쳐 불룩하고
어떤 부분은 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바람막이 마냥 얄팍하게 껍데기만 남는다.
아이가 없던 시절에는 업무량이 많아져도 그냥 '야근하고 말지' 하고 느긋했지만
지금은 무조건 칼퇴근이 목표.
정시 퇴근 후 육아 출근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10년을 근무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방광염.;
화장실 다녀오는데 3분이면 될 것을 미련하게,
일이 급하다고 하나만 처리하고 가야지 이것만 마저하고 가야지 하다 보면
얻는 거라곤 방광염뿐인 거다.
툭툭 두드려 깃털을 펼치면 다시 뭉치거나 얄팍한 부분 없이 골고루
평탄해지는 오리털 잠바처럼
한가한 날과 바쁜 날을 적절히 섞어 하루하루 평탄하게 적절한 하루가 되었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하고 늘 현실성 없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