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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자 Dec 20. 2023

다 같이 놀자

썰메

초등학교 입학을 몇 달 앞두고
유치원에서는 받아쓰기와 그림일기 같은
예비 초등학생의 맛보기? 경험을 시작했다.

오늘은 받아쓰기를 하는 날.
문제는 이미 알림장으로 전달받은 지 오래.
엊저녁 한번 연습이나 하려고 했는데
감기 기운이 있던 아이는
노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초저녁부터
깊이 잠들어버렸다.

뭐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오늘 아침, 아이가 깨기도 전에 출근하는 길
왠지 챙겨주지 못한 받아쓰기가 맘에 걸린다.

누구도 공부 잘하라고 한 적도
틀리면 안 된다고 한 적도 없건만
유독 틀리는 것에 겁내고 툭하면
나는 못한다 눈물 쏟아가며
잘할 자신이 없으면 시작도 안 하려는 아이.
나름의 욕심이 있는 아이의 성향인 건지..

백점이든 빵점이든 상관없지만
틀렸다고 짜증 나면 엄마가
도와주지 않아 그렇다고 원망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발목을 잡는다.
급하게나마 받아쓰기 단어를 적어
거실티브이에 보란 듯이 척 붙여놓고 나왔다.
지가 필요하면 보고 나가겠지.




얼마 전 티브이에서 우연히
티처스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공부가 고민인 청소년들 코칭해 주는 프로그램)
이미 너무 스스로 잘하고 있는 여학생이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처럼 정보를 모르냐며
타박하는 장면을 보는데
왠지 미래의 우리 모녀가 딱 저렇겠다 싶었다.

치맛바람은 둘째치고 흩날릴
치맛자락도 없을 게으르고 소심한 애미.
아이공부를 위해 인맥을 넓혀가며 학습정보를 얻고
발 빠르게 움직여 입시정보에 빠삭한 엄마가 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차라리
인생에 끄트머리엔 엔간하면 치킨집이니(?)
(어느 드라마에서 본듯..쌔 빠지게 노력해서 대기업에서 일하다 잘리면 결국 퇴직금으로 치킨집 차리더라. 그럴 바엔 그냥 일찌감치 치킨집을 차릴란다.. 하는 말에 나름 공감했더랬다)
그냥 적당히 살자고 하고 싶은데.

새벽까지 공부하는 아이에게
같이 잠들지 않고 옆에서 함께 공부하는 엄마보단
빨리 불 끄고 자~하는 엄마가 될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의 세계는 너무 치열해 보여서
뭔가 적당히 해~하는 말도 조심스러울 것 같다.
인생 책임져 줄 것도  아니면서 대충 살라고
종용했다고 원망 들을까 봐.(엄마 INFJ야...)


다 같이 좀 놀면 안 되나....ㅎ;



퇴근 후
오늘 어땠냐 받아쓰기는 잘했냐 물으니
하나 틀려서 90점이란다.
'썰매'를 '썰메'라고 써서 틀렸다고.


살짝 눈치를 보며

아이구 잘했네 잘했어~칭찬세례.
감기기운이 많이 나아졌는지 기분이 좋은지
종알종알..

'썰메'면 어때 네가 행복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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