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비보잉, 드론샷, 첨단기술, 활짝웃는 사람들
KTX를 탈 때마다 마주치는 익숙한 영상들이 있다.
어느 도시를 지나든, 기차 안 스크린에는
비보잉을 추는 청년들,
강 위를 가로지르는 드론,
활짝 웃는 시민들과 ‘첨단과 전통이 공존하는 ○○시’ 같은 문구가 흐른다.
도시마다 다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두 비슷한 도시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려는 영상인데,
묘하게 닮았다.
도시 브랜딩은 본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하지만 요즘 도시 영상들을 보면,
정체성보다는 ‘어떻게 보일지’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젊고 활기차게 보여야 해."
"외국인이 보면 감탄해야 해."
"전통은 넣되, 힙하게."
그래서 결과물들이 비슷하다.
한복, 비보잉, 드론샷, 첨단 기술, 웃는 시민들.
각본은 조금씩 다르지만, 메시지는 같다.
"우리는 짱 멋진 도시입니다."
그런데 그 ‘멋짐’이 진짜인지,
아니면 멋져 보이길 바라는 연출인지
보는 사람은 다 안다.
다만, 말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보여지는 모습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대학, 직장, SNS 등,
겉모습이 기준이 되는 순간,
진짜는 점점 뒤로 밀려난다.
도시 역시 그 흐름을 닮아간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홍보 영상들.
그 영상 속엔 도시들 본연의 모습,
조용한 골목길이나 텅 빈 문화센터,
한산한 버스 정류장은 없다.
현실은 소박하지만,
영상은 화려함으로 가득하다.
몇 해 전, 나는 일본 후쿠시마에 간 적이 있다.
(십여년전 쓰나미로 인해 원전 뚜껑이 날아가버렸던 바로 그곳!)
우연히 그곳을 관리하는 도쿄전력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한창인 복구작업,
아직도 남아있는 당시 사고로 엿가락처럼 휘어버린 철근들도 눈에 띄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들의 안내영상 인트로였다.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크게 써진 몇 문장들
"당시 사고를 천재지변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그건은 인재(人災)였고 충분히 대처할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꽤 흐른만큼 굳이 시작부터 그렇게까지 하고싶진 않았을텐데,
사고이후 우리가 최신기술로 잘복원하고 있다고 자랑 하고싶었을텐데,
그냥 냅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허리를 잔뜩 숙이는 모습은 내겐 꽤 충격이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떤 영상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사고 이후 최단시간 내 극복해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이 함께한 복구 시스템" 같은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책임보다 ‘회복력’을,
반성보다 ‘미래’를 강조하는 데 익숙하다.
그리고 조금은 결이 다르지만,
그런 방식은 도시 브랜딩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지금도 나는 KTX 안에서
정성껏 연출된 도시별 홍보 영상을 본다.
지방소멸의 시대를 맞아,
지자체들의 혼을 다한 영상임을 알기에,
그리고 담당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알기에
(물론 대부분은 외주겠지만)
그냥 웃어버리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감추고 있는 진짜 얼굴,
무심코 포장해 온 나 자신의 모습도
문득 떠오른다.
‘이력서 속의 나’, ‘보고서 속의 나’, ‘브런치 속의 나'
진짜 나는 어디쯤 있을까.
그 질문을 품은 채,
나는 오늘도 도시별 홍보영상을 재미있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