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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생활자 Feb 29. 2020

지나간 히트곡을 들으며 눈물이 나는 것

그리고 당신을 조금 더 알고 싶다

잠깐의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의 라디오에서 디바의 '왜 불러'가 나왔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던 노래다. 그런데 슬며시 웃음이 났다. 라디오에서 90년대 히트가요를 듣는 기분. 나도 이제 그런 걸 느낄 수 있구나. 그리고 잠깐 코끝이 찡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 친하던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신촌의 대형병원 장례식장에서 친구들 몇몇이 모여 그 친구를 위로했다. 친구들은 친구의 얼굴을 보기 전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친구도 자꾸만 눈물을 조금씩 쏟았다. 나는 좀처럼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어떤 마음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난처해하며, 자꾸 음식만 집어삼켰다.


5년쯤 지나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중에 전화가 왔다. 무심히 전화를 끊었는데 문자가 울렸다.

'외삼촌이 돌아가셨데. 바로 장례식장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아.'


울컥 눈물이 나왔다. 예배를 드리다 말고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내 옆의 누군가가 죽는다는 건 이런 거였구나. 결혼 전에 외삼촌 댁에 찾아가서 결혼 소식을 알렸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언제나 가벼운 농담으로 날 놀리던 분이었다. 요즘은 뭐하시냐는 엄마의 물음에, 외삼촌은 게이트 볼을 친다고 얘기하셨다. 그래서 지금도 게이트 볼 장을 지날 때면, 외삼촌이 생각난다. 결혼 후에도 한번 더 찾아뵐걸 후회한다.


외삼촌의 죽음 후에야 가까운 사람이 죽는 슬픔에 대해 겨우 알게 되었다. 외삼촌이 아닌, 부모의 죽음을 겪은 친구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 친구에게 얼마나 미안했던지. 그때 친구 옆에서 울어주지 못했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나를 가끔 아프게 한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울어 준 적이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도 좀처럼 울지 못했다. 그들이 왜 슬픈지 알 수 없는데, 나를 위해서만 눈물이 나곤 했다. 그것은 웃음도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기쁘지 못했다. 다 같이 신나는 자리에서 나는 도망치기만 했다. 그들의 즐거움이 가증스러웠다. 그 기쁨을 내 기쁨으로 만들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아는 척하지 마. 나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에 동조하면, 나는 나의 가식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는 척하는 가증스러운 내 모습. 아마도 나는 다른 사람들 또한 나처럼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살아보니 공감이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었다. 남의 일에 내 일처럼 울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남의 아픔 때문에 스스로가 더욱 괴로운 사람도 있었다. 나이가 드니 조금씩, 그들이 아주 조금씩 보였다.   


그렇게 요즘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조금씩 다른 사람들의 삶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왜 나만'이 아니라, '그래서 너도'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아직은 참 어렵다. 사실 슬픔보다는 기쁨 쪽이 조금 더 어렵다. 그래서 디바의 노래를 듣고 웃음이 나는 내가, 코 끝이 찡하게 좋았다. 나만보던 내가, 너도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리고 당신을 그렇게 조금 더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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