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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생활자 Feb 28. 2020

나를 잊어버린 사람들

당신이 그리워요

인생에서 가끔은 나 아닌 누군가를 챙길 수 없을 때가 온다. 나는 아이를 낳은 뒤 몇 년이 그랬다. 너무 큰 절망감과 무기력함 때문에 누구도 돌보지 못했다. 아니, 나의 아이를 돌보느라, 다른 누구도 돌보지 못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오래전 커피전문점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를 우연히 만났다. 같은 시기에 일을 시작해서 더욱 가깝게 지냈던 사이였다. 나보다 한 살 언니였지만, 파트너들끼리 부르는 닉네임 때문에 언니라고 부른 적은 없다. 그녀와 꾸준히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졌고, 그녀가 일본에 있었던 몇 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인생에서 가장 무기력했던 육아의 시기에, 그녀 또한 몇 년을 방치해두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이를 낳고 축하 선물을 보냈다고 했는데, 받은 기억은 없다.


반가워하는 나를 보고, 그녀의 표정은 묘했다. 회사 동료들과 식사를 하러 나가던 자리라서 '나중에 연락하자, 곧 만나자'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며칠 뒤 문자로 연락했지만, 답장은 없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더 이상은 연락하지 않았다.


교회의 같은 팀에서 함께 일했던 동생이 있었다. 여자들이 많은 팀에 남자 애가 씩씩하게 잘 버텨서 예뻤다. 군대에 간 동안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다. 교회를 옮기고, 결혼을 한 뒤에도 몇 년을 연중행사처럼 만나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몇 년 뒤, SNS를 통해 그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이미 결혼을 하고도 몇 달이 흐른 뒤였다. 어색하게 문자로 결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왜 결혼을 알리지 않았느냐고 묻지 못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는데 아쉽기만 했다.   


옛 직장 동료들도 결혼초까지는 꾸준히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다가, 육아의 늪을 지나는 동안 많은 이들이 떠나갔다. 그 시기가 지나고 이루어진 나의 연락에, 그들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당신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갖고 있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를 낳고 백일만에 출근해서, 낮동안엔 발을 동동 구르며 회사 일을 하다, 저녁엔 살림을 하고, 밤에는 자주 깨는 아이 옆에서 쪽잠을 잤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육아와 회사일만으로도 너무 벅차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 시기에 그들이 나에게 연락을 했는지, 메시지를 보냈는지, 다른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그 시기에 일어난 일들이, 난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라는 가정을 세운다. 아마도 내가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기에 그들은 나에게 상처 입은 것이리라. 그의 연락을 받고도 답하지 않았거나, 그녀가 보낸 선물을 반송되게 만들었던 것이리라. 모임의 초대를 번번이 거절했고, 가볍게 물은 안부에 날카롭게 반응했으리라. 그들은 아마도 그렇게 상처 입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쉬워하지 않는다. 아쉬운 건 나다. 내 마음 한조각이 아직 그들에게 남아있어서 나는 여전히 그들이 종종 그립고, 그들이 종종 보고 싶다. 오늘처럼 비가 오고,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그들을 만나서 따뜻한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조잘조잘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남아있는 조각만큼 아쉬워하며, 그리워하며 생각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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