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호시절

by 시골생활자

'아, 그때 나 참 좋았구나.'


불행히도 가장 빛나야 할 20대의 나는 무척 초라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은 돈이 제법 많이 들었다. 학교에 차를 몰고 등교하거나,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또래가 제법 많았고 나는 가진 것이 없었다. 여기저기 나오는 성공 스토리처럼 억척스럽게 알바를 해서 부족한 걸 채웠다면 좋겠지만,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아껴가며 없는 형편에 그대로 학교를 졸업했다.


생각보다 쉽게 들어간 회사에서는 더욱 초라했다. 없으면 없는대로 나를 감싸주던 몇몇의 친구조차 그 곳에는 없었으니 말이다. 업무적 성과를 내기에 나는 한참 못 미치는 듯했고, 거기에 더해 나의 옷차림, 몸매, 가정형편 같은 것들이 가벼운 농담거리로 오고가는 문화를 가진 곳이었다. 2년 반만에 회사를 나오고 나서도 나는 오랫동안 다시 그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 꿈을 꿨다. 악몽이었다.


연애도 비슷했다. 데이트할 돈이 없으니 상대는 나를 무시하기 일쑤였고, 끌려다니듯 한 한번의 연애와 몇 번의 만남은 나의 자존심만 자극했다. 결국 연애와 담을 쌓았다. 갈피를 못 잡던 시절이었다.


어영부영 결혼을 하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더 거치고 남편과 시작한 사업은 여행사였다. 10년동안 그 일을 하면서 수많은 곳을 여행하고, 여행인솔자로 커리어를 쌓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의 손님들은 나를 초라하게 봐주지 않았다. 여행의 가치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유로운 영혼이었고, 사회적인 통념보다는 자신의 주관을 믿는 부류가 더 많았다. 나는 점점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안에서 대화의 기쁨과 인간적 교류의 즐거움을 알았다. 내가 모르는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늘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푹신한 침대, 맛있는 음식,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소들. 그 곳에서 행복을 누렸다.


아이를 낳고, 더 이상 마냥 출장을 갈 수 없을 때에야 알았다. 아, 그 때가 내 호시절이구나.


코로나로 여행업을 그만두고 했던 일은 학원업이었다. 작은 학원을 개업해서 하루에 10명 내외의 아이들을 만나며 그림을 가르쳤다. 계산없이 사람을 대하는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좋았다. 진심을 보여주면 곧 기쁨으로 돌아왔다. 그 생그러운 표정 속에서 4년이란 시간을 쌓았다.


체력적인 한계와 경제적인 이유로 학원을 그만두고 1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는 종종 다시 생각한다. 아, 그 때가 내 호시절이구나. 성과와 능력으로 나를 평가하지 말자고 자주 나를 다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빛나던 시절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가장 즐겁게 하고 있던 그 때였구나.



올해는 몸이 많이 아팠다. 8개월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조금만 무리하면 쉽게 지치는 나를 본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공황이 왔다. 운전을 할 때 공황발작이 몇번 와서 장거리 운전을 점점 기피하게 되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생활반경도 점점 줄어들고, 즐겁게 그리던 그림도 좋아하는 재봉도 종종 버겁다.


나의 호시절이 또 올까 생각해본다. 답답하기만한 지금도 언젠가 돌아보면 '아, 그 때가 내 호시절이었구나' 할 수 있기를. 그러면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재봉을 하고, 운동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영어공부를 하며 하루하루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성실히. 그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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