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 임신, 누가 법으로 정해 놨나요?

나 대신 낳아 자기 자식처럼 길러줄 것도 아니면서.

by 리휜








남편과 나는 중거리(?) 커플이었다. 남편은 부산 남자, 나는 대구 여자. 우리 둘 다 토요일에도 근무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일주일은 말도 안 되게 길었다. 목 빠지게 기다리던 일요일 아침이 되면 설렘에 가슴이 잔뜩 부풀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일요일이 지나가면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매번 기차에 오르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못했다. 그런 1년을 지나 우리는 결혼을 했다.


[아기는 바로 갖지 말자.]


남편은 연애 기간 내내 느꼈던 그 아쉬움을 보상받고 싶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사랑하는 사람이 반겨주고, 둘이 함께 여행을 떠나도 누구에게도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고. 나도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내 나이가 아직 이십 대 후반에 불과했다는 점도 우리의 결정에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렇게 신나게 2년을 놀았다. 벚꽃이 피면 꽃구경을 가고, 여름휴가철이 되면 일본으로 짐을 싸 떠났다. 가을이면 자전거를 꺼내 타고 강변을 달렸고 겨울에는 잠옷에 수면 양말 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나가 붕어빵을 사 먹었다. 둘 다 살이 10킬로가 넘게 쪄버렸지만 우리는 그걸 ‘행복’이라 부르며 웃었다.


(남편은 노력 끝에 금세 예전의 몸무게를 회복했지만, 나는 임신하기 전까지도 그때의 그 지방을 전부 덜어내지 못했다. 둘이 같이 먹고 같이 살쪘는데 말이다. 아직도 나는 그것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삼십 대 초반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특별한 감상을 가지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닌 남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기혼자이기에 더더욱.


아기는 아직, 생각 없어?


그쯤의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늘 듣던 질문이었다. 그 말은 가끔 가벼웠고 가끔은 무거웠으며, 어떤 때는 무례함마저 들어있곤 했다. 그 물음을 들을 때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요. 한참 생각을 하다 내놓은 내 나름의 대답은 그것이었지만 듣는 누구도 내 생각을 오롯이 이해해 주지 못했다.


무슨 준비? 부모가 되는 걸 준비하고 하는 사람도 있어?


아아, 무신경하게 되묻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일일이 노트에 적었다면 지금쯤 아마 새까맣게 글자로 뒤덮인 노트가 다섯 권은 나왔을 것이다.
구구절절 대답하는 것조차 성가시기 시작해서, 나는 어느 순간 그런 물음에 대꾸조차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놀랍게도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꽤 확고한 비혼 주의자였다. 빚 많은 집의 첫째로 태어나 실패를 무서워하는 성격으로 자랐고, 주변인의 결혼 생활은 단언컨대 단 한 집도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않았다. 당장 내 부모의 결혼조차 그랬다. 자연히 자라는 내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관해 비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투자도 뭔가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결혼은 말하자면 내게는 투자 가치가 제로인 종목이었다.


그런 주제에, 나는 아이와의 삶을 꿈꿨다. 나와 엄마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모녀지간이 아니라 친구 사이라고 오해할 만큼 서로 허물없이 지내며 서로의 가장 속 깊고 내밀한 고민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이였다. 그랬기 때문에 어느새 내게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자라났다. 엄마와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더욱,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은 없었지만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열망 같은 것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딸의 입장에서 늘 받아오기만 했던 무조건적인 애정과 신뢰. 그런 것을 다른 이에게 주게 되는 모성이라는 건 대체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그런 호기심이 가장 컸다.


하지만 그런 내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현실적 난관이 산적해 있었다. 일단 첫 번째로 임신과 출산에는 내 난자와 수정해 태아라는 것을 구성할 정자, 즉 아이의 아빠가 필요하다. 어떻게 정자만을 받아 홀로 임신과 출산을 해낸다 해도 이 사회가 미혼모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배타적인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에게는 나 아닌 다른 생명의 의식주를 책임질 수 있을만한 커리어 또한 부족했다. 그렇다면 결국 결론은 결혼을 통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는 방법뿐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 해낼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엄마라는 꿈을 위해 결혼이라는 결함 가득한 디메리트를 짊어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내가 비혼이라는 신념을 가진 이상, 임신과 출산은 평생 이룰 일이 없는 환상에 가까웠다.


그랬던 내가 남편을 만났다. 이제껏 겪어온 어떤 남자들보다도 대화가 잘 통했고, 언뜻 내가 이상하게 구는 날에도 인내심을 갖고 내가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곤 했다. 감정에 휩쓸려 사나운 말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성격이었으며 내가 스스로의 감정에 휩쓸려 무너질 때면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어 주었다. 아버지에게도 느껴본 적이 없는 안정감을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맡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로의 가족에게 서로를 소개하며 그들의 앞에서 남은 생애 동안 서로의 반려로 살겠다는 결심을 알리는 일, 그 결심을 국가에 서류로 제출하여 사회적 인정을 받고 더는 되돌릴 수 없도록 일가친척과 주변 지인을 모조리 휴일 오전에 불러내어 결심한 일을 축하받는 것까지. 지독하게 지루하고 복잡할 절차를 거쳐 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 졌다. 얼굴만 바라보아도 좋았던 시절이 지나 기어코 얼굴만 보아도 성질이 나기 시작했을 때, 우리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로 관계를 가볍게 정리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싶어 졌다.


서로의 손을 놓기조차 어려운 관계를 맺고 싶어 진 일, 그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터닝 포인트였다.

그렇게 남편을 만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맺은 지 겨우 2년이었다. 나는 약 30년을 줄곧 나라는 존재이기만 하면 됐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아내와 며느리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다. (심지어 그 아내와 며느리라는 역할은 내가 살아오면서 내내 할 일이 없다 생각해, 연습이나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평생 내 편할 대로 살아오던, 고집 세고 이기적인 여자는 이 역할도 겨우겨우 빠듯하게 해내고 있었다. 여기에 엄마라는 역할까지 해야 된다고?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앞서 말했듯 엄마와의 관계가 돈독했던 나였기에, 나는 ‘엄마’가 된다는 것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나는 과연 나의 아이에게 내 엄마 같은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내 대답은 No였고 적어도 그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섣불리 엄마가 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주위의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아이를 낳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어느새 없어지고 ‘아이 엄마’ 로서 살게 된다고 하던데, 내게는 아직 그런 무조건적인 희생을 감내할 만한 인내심 또한 부족하다 생각했다. 생긴다고 덜컥 낳아 부모를 택해 태어날 수 없는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다니, 어불성설이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양가 부모님들은 꽤 아이를 기다리셨던 눈치였다. 시부모님은 완강하고 굳은 남편의 고집 앞에 말조차 꺼내지 못하신 듯했고, 친정 식구들은 어린 내 나이와 우리의 연애 시절을 모두 알았으므로 나를 채근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결혼 당시의 나는 겨우 서른을 앞두고 있었고, 요새는 마흔의 나이에도 첫 아이를 낳는 시기였다.


(엄마는 내가 결혼을 결심했을 때도 너무 빨리 결혼하는 것이 아니냐며 끝까지 나를 만류했다. 사람은 사계절 정도는 같이 지내보는 것이 국민적인 룰이라는 말까지 덧붙여가며. 물론 고집이 쇠고집인 딸내미는 그 말을 듣고도 결혼을 밀어붙였지만.)

그런데 의외의 말은 그렇게 나를 만류했던 친정엄마에게서 나왔다. 이제 슬슬 임신을 준비해보려 한다는 말을 꺼내자, 엄마는 대뜸 이런 말부터 내뱉었다.


[그럼 안 낳으려고 했어?]


띠용. 결혼도 만류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나에게는 임신 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음을 설명했지만, 여전히 엄마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내 설명도 언뜻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혼했으면 아이 갖는 건 당연한 일 아니야?]


아니, 그게 어째서 당연한 일이지. 반박하고 싶은 말이 입안에 한 움큼이었는데 정작 나는 허탈하게 웃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째서 그토록 아기 생각을 꼬치꼬치 캐묻는지 이해하고야 말았다. 우리 친정엄마조차 이러는데, 하물며 남이야. 또한 동시에, 내가 그 질문들을 받아내면서 어째서 그토록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한 사람은 무조건 임신과 출산을 해야만 한다고 대한민국 법에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내가 기혼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임신과 출산을 생판 남에게 채근받아야 하는가. 우리의 가족계획은 어디까지나 우리 부부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아주 사적인 부분인데 말이다.


나는 엄마에게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그 부분을 일깨워 주었다. 아무리 엄마가 내 엄마지만, 난 이제 결혼을 한 몸이니 그런 사적인 영역까지 엄마에게 지적받고 싶지는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엄마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의했다. 본인이 아주 “꼰대 같은 마인드”를 갖고 나를 대했다 인정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에게 그 순간은 아주 뿌듯하고 감격적인 순간으로 남아있다. 드디어 나의 가족관을, 당사자인 남편이 아닌 누군가에게 이해받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옆집 강아지가 새끼를 낳는 일까지 담너머로 공유하며 지내온 유구한 ‘사생활 침해’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그러니 어쩌면 나의 임신과 출산이 내 주변인들에게 궁금증과 가십으로 소비되는 일도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가족계획은 어디까지나 남편과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할 몫이다. 까놓고 말해서, 남들이 나 대신 애를 낳아 키워줄 일도 아니지 않은가.


여하간, 그런 달갑지 않은 주변인들의 관심 속에 우리는 드디어 결혼 2년 만에 임신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