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엔 급한 성격도 아닌데 대체 왜 이렇게 조바심이 날까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관심의 탈을 쓴 주변인들의 참견은 한층 더 격심한 양상을 띄었다. 임신 전에 몸을 만들어 둬야 한다던데 운동은 좀 했냐는 말부터 그래서 거사(?) 날은 언제냐 같은, 거의 반은 성희롱에 가까운 말들까지... 내가 조금만 더 성질이 불같은 사람이었더라면 아마 큰 싸움이 몇 번은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것에 일일이 대거리하지 않고 참아 넘긴 이유는 그렇게 지독한 말을 농담처럼 건네던 그들이 내 친구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임신 준비기간에 누구나가 겪는 마음의 소란함 때문이었다.
본격적으로 임신을 준비하겠다 생각하자 갑자기 이전까지는 들지 않았던 오만가지 가정들이 머리를 뒤덮기 시작했다. 쉽게 임신이 되지 않으면 어쩌지? 요새 세 가구 중에 한 가구는 난임으로 고생한다던데, 그게 우리 가족이 된다면? 임신과 출산까지 철저히 계획해뒀는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떡해? (남편과 나는 정말 철저히 임신 기간과 출산 시기까지 고려한 계획 임신을 했다.) 아니, 사실은...
나 잘할 수 있을까?
막상 본격적인 임신 준비를 하겠다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게 임신은 미지의 영역이자 막연히 두려운 일이었다. 미혼이었을 시절의 나에게 임신은 축복이라기보다는 재난에 가까웠고, 가급적이면 절대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었다. 결혼하면서 평생 살아온 동네를 떠나 부산으로 오게 된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취직을 하지 못했기에 나의 임신 공포증은 더욱 심해졌다. 그대로 아이까지 생겼다간 우리 집의 재정상황은 그야말로 파국을 향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몇 박스의 피임약과 피임기구들의 도움으로 우리 가정의 경제는 아슬아슬하긴 해도 박살이 나진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내 나름의 각오도 세웠다. 그러니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임신이라는 글자가 갖는 무서움은 쉬이 그 색이 바래지 않았다. 임신 테스트 기의 두 줄이 떠오르는 것을 기다리면서도, 막상 두 줄이 뜨게 되면 어쩌냐는 불안함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임신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고 나니 도대체 임테기는 또 왜 그렇게 자주 해보고 싶은지. 임신 준비를 하며 정보를 찾기 위해 가입했던 맘카페에서는 테스트기를 믿지 말라는 말도 많았고 너무 자주 해보는 것도 엄마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여론이 대다수였다. 그 글들을 읽을 때는 그래, 내가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지 하면서도 막상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임신 테스트기를 손에 들고 이걸 뜯어, 말아하며 고민을 해댔다. (테스트기 결과는 보통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받는 첫 소변으로 해보는 것이 가장 정확도가 높다고들 한다.) 혹시나 불량이 있을까 저렴한 테스트기는 사지도 못하고 약국에 직접 찾아가 약사님에게 제일 정확한 걸로 달라고 했던 임신 테스트기는 몸값도 비교적 비싼 편에 속했지만 그런 계산이 그때는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임신 테스트기를 시험할 때마다 내 마음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테스트기 봉투를 찢을 때는 임신이길 바라다가도 소변을 받으면서는 임신이 아니었으면 했다. 테스트기의 뚜껑을 닫고 차마 볼 자신이 없어서 화장실을 뛰쳐나가 한참 심호흡을 한 적도 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복잡하고 두려웠던 걸까?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때 왜 그렇게 불안에 떨었는지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18년 7월 16일, 임신 준비를 시작한 지 약 5개월 만에 나는 화장실에 앉아 희미한 임테기의 두 줄을 만나게 되었다. 정확한 배란일까지 체크하며 신경을 쓴 지는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처음 떴을 때는 너무 희미해서, 사실 이거 맞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약 5분이 지난 후 그 줄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하자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거 진짜, 진짜로? 임테기를 든 손이 가늘게 떨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또다시 해 본 임신 테스트기에서도 나는 희미한 두 줄과 만날 수 있었다. 그 줄 또한 처음에는 희미했으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두 줄이라고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해졌다. 아, 이거 진짜일 수도 있겠구나. 비실비실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그 길로 핸드폰과 지갑만 들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마침 그 날이 쉬는 날이었던 것이 내 행동력에 박차를 가했다. 아닐 수도 있으니 큰 기대를 갖지 말자 하면서도, 산부인과로 향하는 내내 다리를 동동 굴렀던 것이 기억난다. 기쁨과 약간의 두려움, 벅찬 설렘과 약간의 걱정 같은 감정들이 오락실의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안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담당 선생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아차, 싶었다. 산부인과에서는 내 생리 시작일과 부부관계일 등을 묻더니, 너무 이른 시기라 임신이더라도 초음파로는 아기집이 보이지 않을 거라며 확실한 확인을 위해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맘카페에서 봤던 ‘서두르지 말라’는 말은 바로 이런 상황을 가리키는 말임을 깨달았다. 몽글거리며 부풀었던 마음이 푸식, 꺼져 내렸다.
채혈을 하고 돌아오자 간호사 선생님은 다음 주에 다시 병원을 방문해 임신 확인을 해달라고 했다. 혹시 생리가 시작된다면 바로 병원을 방문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온 내게 그 다음 일주일은 그야말로 ‘환장의 시간’이었다. 병원에서는 임신 테스트기의 반응이 거의 정확할 것이라고 했지만 붕 뜬 마음이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만약 아니라면 어쩌지? 혹시 생리가 시작되면 어쩌지?? 매일 아침 화장실에 앉아 임테기를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정말 임신이라면 또다시 두 줄과 만날 테고 기쁜 마음으로 산부인과 가는 날을 기다릴 수 있을 테지만, 한 줄이 뜨기라도 한다면? 가뜩이나 고생 중인 마음이 조각조각 부서질 것 같아 무서워서 결국 임테기는 다시 서랍에 처박혔다. 서두르지 말라던 말은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한 선배의 선견지명이었음을 뼛속 깊이 뉘우치며 내 성급함을 후회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애 내내 가장 길었던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산부인과를 찾았다. 저번 주에 병원을 방문했을 때의 막연한 기쁨과 설렘 같은 것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긴장과 걱정으로 대기 내내 입술을 뜯었다. 저번 방문 때와 수치를 비교하기 위해 또 한 번 채혈을 한 지 15분 정도가 지나고 간호사 선생님이 내 이름을 호명했다.
[초음파 한 번 볼게요.]
모니터로 혈액검사 수치를 확인하던 담당 선생님의 말에 심장이 널을 뛰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굴욕 의자라 불리는 검사 의자에 누워 다리를 벌리는 일도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부끄러움을 느낄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임신 맞네요. 축하드려요.]
요기 요 작은 거, 요게 아기집입니다. 바라던 말이 들려오던 순간이었다. 모니터에는 하얗고 까만 얼룩들 사이에 콩만 한 점 한 개가 콕 박혀있었다. 너무 작아 사실은 화면에 오류가 난게 아닌가 했지만 선생님은 그 작디작은 것이 곧 자라 아기가 될 것이고, 착상이 잘 됐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일주일 내내 해댄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임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왈칵 눈물이라도 쏟지 않을까 했었는데, 정작 내 마음은 얼떨떨했다.
TV에서 보던 임신 확인의 순간은 대체로 감격 그 자체 거나, 절망의 입구 그 어디쯤이었다. 아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사실을 알자마자 환호하며 서로 부둥키기 바빴고 원치 않던 임신인 경우 홀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도 만약 임신을 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딱 그럴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괴상한 의자에 넋을 놓고 누워 다리를 벌린 채였다. 눈물이든 기쁨이든, 격한 감정이 들기는 힘든 그런 상황. 나는 멍하게 화면만 바라보며 생각했다.
현실과 드라마는 이렇게나 동떨어져 있구나.
그리고 이 감상은 내가 임신 내내 몇 번이고 느끼며 마음 깊이 새기게 될 진실이었다.
P.s - 혹시나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 중에 예비 엄마를 준비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을 보시더라도 생리 예정일이 지나신 다음 병원을 방문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예... 추천드려요.......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