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가졌을 뿐인데,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목 빠지게 임신을 기다렸던 것도 아니면서 막상 임신을 확인하자 다시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두 줄이 뜬 임테기를 남편에게 선물했고(남편은 선물 상자를 열자마자 울컥 눈물을 흘렸다), 다른 하나의 두줄 임테기는 친정 엄마에게 주었다. 그리고 초음파 사진을 들고 시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가게로 찾아가 임신 소식을 알려드렸다. 나는 그 날 우리 결혼식에서도 보지 못했던, 무뚝뚝하고 표현 없으신 경상도 남자 시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그때에서야 누구보다도 시아버지께서 우리의 아기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 아닌 다른 이들의 기쁨은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돌아와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이래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옛 말이 있는 건가 보다 싶었다.
작은 이모가 꿔준 태몽에서는 무지개 밑에 선 아름드리나무에 어른 주먹만큼 크고 반짝거리는 자두가 한가득 열렸더라고 했다. 그래서 아기의 태명은 ‘반짝이’가 되었다. 친정 식구들은 직관적으로 자두라고 짓자고 했지만 내가 반대했다. 친구가 키웠던 반려견의 이름이 하필 자두였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남편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그렇게 태명까지 짓고 나자 이제 정말 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았다. 아직까지 매끈하기만 한 내 아랫배에, 내가 키워낼 식구가 들어있다는 사실은 매일매일 새롭게 나를 설레게 했다.
그리고 정확히 임신 10주째, 드디어 공포의 그 구간이 시작됐다.
입덧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들어봄직한 바로 그 단어. 드라마에서는 그저 구역질 몇 번으로 표현되지만 임신 출산을 거친 선배 엄마들에게는 임신 초기의 가장 힘든 난관으로 평가받는 바로 그것. 임신을 확인한 기쁨에 잠시 잊혀져 있던 그 역경은 소리도 없이 찾아와 있었다.
보통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입덧은 대체로 더부룩함을 동반한 구역질, 그로 인한 구토였다. 신 것을 많이 찾기도 하고 평소보다 많이 먹는 등의 현상도 보여주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인식에 각인되는 것은 강렬한 것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나도 그런 입덧을 겪을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입덧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일단, 너무 졸렸다. 평소에도 잠이 많은 편인 나는 입덧 기간 내내 병든 닭처럼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비실거렸다. 밤 열한 시가 되면 거꾸러지듯 잠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에는 지각의 위험 앞에서 졸음과 내내 싸워야 했다. 점심을 포기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자고 나면 조금 개운할 법도 했는데, 오히려 나는 더욱 무기력과 피곤에 시달렸다. 그것이 입덧의 초기 증상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A라는 일을 해내는 데에 10이라는 체력이 필요했다면 그때는 15-20 정도의 체력이 필요했고, 그렇게 써버린 체력이 회복되는 데에 1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그때에는 30분의 시간이 걸렸다. 잠은 피로의 회복을 돕는다기보다 도리어 그 피로를 부채질하는 현상이 되어갔다.
그렇게 잠에 시달리면서도 먹을 것은 제대로 챙겨 먹어야 했다. 챙겨 먹지 못하면 안 그래도 좋지 못한 속은 거의 뒤집어질 정도의 구역감을 호소했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밥 냄새가 역해 밥솥은 근처에도 가기 싫었다. 그나마 조금 먹을 수 있는 것은 삶은 감자였다. 그래서 시어머님은 밥도 못 넘기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이틀마다 한 번씩 커다란 솥에 감자를 삶아 주시는 게 일이었다.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양치였다. 양치를 하기 시작하면, 도저히 칫솔을 물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의 구역감이 몰려들었다. 결국 칫솔로 이를 닦는 일은 포기하고 갓난아이가 이를 닦는 것처럼 가제 수건으로 겨우 이 표면을 닦아내는 정도만 하는데도 욕지기가 솟았다. 하는 둥 마는 둥 양치를 하고 나면 내내 울컥 치받는 속을 참느라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이걸 양치 덧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누가 이런 입덧도 있단다, 하고 친절히 가르쳐 주지는 않았으니까.
내게 임신은 내내 그런 난관의 연속이었다. 그저 입덧 좀 하고 배가 불러와 코에서 수박을 빼낸다는 출산을 하는 정도의 간략한 정보만을 갖고 있었는데, 임신은 생각보다 다방면에서 각종 역경이 달려드는 인륜지대사였고 나는 그에 대한 대비조차 되어있지 않은 초보 임신부였다. 임신 전에는 자연스럽게 하던 일들이 임신 후에는 하늘이 두 쪽 나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되어갔다.
하루에 한두 잔은 꼭 즐기던 커피.
임신을 하고 나니 누가 마시는 커피를 내내 타 주기만 하는 신세가 됐다.
기관지가 약해 자주 탈이 나는 탓에 감기 기운이 조금만 있어도 미리 먹던 감기약.
이제는 독감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도 받을 수 없다.
그뿐인가, 주변에서는 쉼 없이 내게 각종 정보창을 퍼다 나르며 조심해라 먹지 마라 신경 써라 잔소리들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기를 가졌을 뿐인데, 마치 내일모레 죽어 넘어질 큰 병에 걸린 환자라도 된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환절기가 다가오자 기관지가 약한 나는 감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임신을 한 몸이라 약도 먹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걱정은 더욱 불어났고, 곧이어 생각해낸 궁여지책이 바로 꿀물이었다. 따뜻한 물에 커다랗게 꿀을 한 스푼 떠 넣고 마시면 몸도 따뜻해지고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지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난데없이 지인이 호들갑을 떨며 그걸 설마 벌써 마신 거냐고 물었다. 놀라서 방금 한 잔을 먹었다고 대답하자 지인은 꿀이 임신부에게 좋지 않은 것도 모르냐며 앞으로 꿀은 입에도 대지 말라고 했다. 그럼 감기 걸리면 어떡해? 묻자 그런 걸 걸려선 안 되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맥이 탁 풀어졌다.
(이후에 검색해보니 꿀이 무조건 좋지 않다는 말은 낭설이며, 다만 꿀은 열처리를 하지 않은 음식이라 미생물과 세균이 번식할 수 있는 음식이므로 섭취에 주의를 요한다고 했다. 미생물과 세균을 이겨낼 면역력이 없는 신생아는 꿀 섭취를 금하는 것이 맞지만, 이미 성인인 임신부는 충분한 면역력을 갖추고 있으니 섭취를 금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결국 나는 정확하지도 않은 사실에 속아 임신 기간 내내 꿀을 피해 다녔다.)
입덧 내내 잠과의 싸움에 시달리다 보니, 자연히 매일 누워만 있는 몸은 뻣뻣해지고 여기저기 근육통이 생겼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개운하게 자지 못하니 조금의 통증도 크게 다가와서, 아무 생각 없이 임신 전 일본 여행을 갔다가 사 왔던 휴족시간(마사지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들도록 해주는 겔타입의 시트. 쿨링감이 있어 붙이면 시원하다.)을 꺼내어 붙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선배 엄마이자 아는 동생은 기겁을 하며 얼른 떼어내라고 했다. 피부로 스며드는 성분은 가장 빨리 아기에게 전달된다면서.
(동생은 그 제품이 의학용 성분이 들어있는 파스인 줄 알았다고 했다.)
결국 나는 그 동생에게 짜증을 내며 되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뭔가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면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초록창을 켜고 임신부 ㅇㅇ을 검색했다. 임신부 키위, 임신부 생강차, 하다못해 임신부 감자까지.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임신부 운동, 임신부 여행, 임신부 양치... 치열한 자기 검열의 시간이 끝나야 겨우 먹고 싶은 것을 찾아 먹을 수 있었고 그나마도 먹다가 졸음이 밀려와 꾸벅꾸벅 졸다가, 치울 겨를도 없이 또 자리에 눕곤 했다. 마음이 가라앉아 우울한 날에는 대체 이게 사람 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눈물을 찍어내며 잠들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임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다. 스트레스야말로 임신부와 태아의 컨디션에 가장 악영향을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세간에 도는 임신부에 좋은 것, 좋지 않은 것은 대체로 의학적인 근거가 있는 경우가 드물며 오히려 그런 이유로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해 받는 스트레스가 더 좋지 않다는 것이 내 진료를 봐주셨던 의사 선생님의 의견이었다.
그러니까 커피도, 너무 먹고 싶어서 스트레스를 받으실 지경이라면 하루 한 잔 정도는 드셔도 돼요.
술담배만 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하시며 선생님은 웃으셨지만 그 말을 듣고도 커피를 마실 생각은 들지 않았다. 디카페인을 마신다고 해도 카페인이 조금은 들어 있으니 좋지 않다더라, 커피 마신 날은 아기가 내내 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도록 발길질을 하더라.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이 가슴과 몸에 묵직하게 얹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아기를 가지게 되면 마냥 행복하고 즐거울 줄 알았는데, 정작 임신부가 되고 나니 자유롭게 먹고 마실 자유가 없는 건 물론이고 내 멋대로 아픈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푹 잠들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 못하는 시기라 예민함이 치솟아 있는 임신 초기. 거기다 호르몬도 날뛰어 그때의 임신부는 누가 쿡 찌르기만 해도 와락 달려들어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맹견과 같다.
그런 시기에 듣는 주변인들의 걱정과 염려는 감사한 일이긴 해도, 솔직히 정말 듣기 싫었다.
다 안다. 나에게는 첫아기이자 당신들께는 첫 손주, 첫 조카라는 것을. 그러니 아프지 않고 괴롭지 않고 나쁘다는 것은 피해 가며 건강한 아기를 낳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을. 하지만 사실 그런 마음은 임신 당사자인 사람이 가장 크기 마련이다. 임신이 처음이고 아기가 처음인, 이제부터 10개월 동안 내 몸에 아기를 품어야 하는 엄마야말로 그 어떤 누구보다 가장 걱정과 불안이 큰 사람 아니겠는가.
그러니 혹시 주변에 임신부가 있다면, 그 일거수일투족을 검열하지 말고 그저 마음 편히 지내라고 해주는 건 어떨까. 나까지 달려들어 걱정해주지 않아도 초보 임신부의 하루는 이미 충분히 수많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