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 벼슬이냐고요?

출생률 0%대 나라에서 임신부로 산다는 것은

by 리휜








임신 12주가 되어, 엽산과 임신부 배지를 지급받기 위해 보건소를 찾았다. 먹고 있던 엽산도 있었지만 모름지기 나라에서 준다는 것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따랐다. (이럴 때는 참 말 잘 듣는 딸이다.) 보건소에서는 임신 확인서와 산모 수첩 등을 확인하고, 인적 사항을 받아 적더니 여러 가지 물건들을 내주었다. 임신 내내 꾸준히 먹어주면 좋다는 엽산, 주수가 조금 지나면 꼭 복용해야 한다는 철분제, 그리고 임신부 배지와 생소한 모양의 기계까지. 임신부 태그라고 불리는 그 물건의 용도는 이랬다. 지하철에 탑승하면 임신부 배려석 옆 바에 커다란 핑크색 장치가 붙어있다. 그 장치는 주변에 태그를 장착한 임신부가 있으면 번쩍이며 불을 내뿜고, 혹시 그 좌석에 먼저 앉은 탑승자가 있다면 그 번쩍임을 보고 임신부가 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도록 비켜준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만날 수 있는 기묘한 물건 (사진 출처 : 부산일보)



그 당시 나는 지하철 1호선의 종점에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었고, 출퇴근 시간이 일반 직장인들과는 다른 시간대였기 때문에 그 태그를 이용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내내, 그 기계에서 핑크색 조명이 번쩍거리는 모양을 보지도 못했으니 아마 나 아닌 다른 임신부들도 그 장치를 이용하지는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장치는 일부러 끄지 않는 이상은, 자리에 태그를 착용한 임신부가 앉아있어도 번쩍거린다고 했다. 괴랄한 모양에 엉성한 성능까지, 임신부들이 태그를 착용하지 않는 이유도 짐작이 갔다. 피 같은 내 세금을 저런 데다 쓰다니. 솔직히 볼 때마다 탄식이 나왔다.

임신부가 되고 나니 임신부에게 제공되는 나라의 정책이 얼마나 비실용적인지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기묘한 저 임신부 배려석용 태그는 그 시작에 불과했다. 솔직히 제일 쓸만하고 유용한 임신 출산 지원 바우처도, 나 같은 경우 임신 32주 차 정도에 거의 다 써버렸다. 갈 때마다 보아야 하는 초음파, 수시로 뽑아 체크하는 혈액 검사, 막달에 가까워지면 태동검사까지. 갈 때마다 해야 하는 검사는 한두 가지가 아니고 50만 원은 그 금액을 커버하기에 턱도 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그나마도 살뜰하게 쓰기는 했으니 가장 도움이 된 정책임에는 틀림없다. 그 외에 직접적 혜택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정책? 보건소에서 지급받은 엽산과 철분제 정도일까. 아, 같이 주셨던 아기 물티슈 정말 잘 썼습니다.

일단 임신부 배지를 지급받았으니 바로 가방에 달아 착용했다. 임신부 배지는 배가 불러와 누가 봐도 임신부임을 알 수 있는 후기 임신부보다, 배가 나오지 않아 상대적으로 표가 나지 않는 초기 임신부를 위한 배려다. 임신 기간 내내 지하철과 버스는 힘이 들지만, 초기에는 입덧이 심한 편인 사람이 많고 조심하지 않으면 유산의 위험도 있는 시기이다 보니 더욱 임신부 배려석이 간절하다. 지하철 종점이 가까운 동네에 살다 보니 굳이 노약자석이나 임신부 배려석을 이용하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임신부 배지를 착용하니 한층 남들의 고까운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 만한 작은 플라스틱이 대체 뭐라고 이렇게도 편안할까. 임신부 배지도, 배려석도 없던 시절의 선배 엄마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아주 가까운 나의 지인 k. 그녀는 24살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키도 작고 얼굴도 앳되어 누가 본다면 학생이라고 생각하지, 결혼한 새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아기 엄마가 된, 나보다 어리지만 엄마 경력은 훨씬 선배인 소중한 지인이다. 그녀는 임신 기간 내내 남편이 없이는 산부인과를 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그녀가 씁쓸하게 한 대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노약자석에 앉아서 가면, 어르신들이 하도 시비를 걸어서요.]

팔팔한 젊은것이 대체 왜 남의 자리를 빼앗냐는 둥(자리 주인이라고 이름 적어둔 것도 아닐 텐데.), 요새 젊은것들은 인내심도 없어서 좀만 힘들면 아무 데나 주저앉는다는 둥 별별 이야기를 다 하다가, 참다못한 남편이 임신부라 그러니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면 그때에서야 꼬리를 말고 도망가듯 자리를 피했다는 것이다. 자리를 피하면서도 꼭 뒷말로 임신이 무슨 벼슬이냐고 중얼거리면서. 아마 자신이 키가 작고 앳된 얼굴이라 만만해 보여서 더 그랬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배가 불러온 후기 임신부 때에도 엘리베이터를 타면 뒤에서 혀 차는 소리들이 들리다가 배가 부른 앞모습을 보면 조용해졌다고 했다. 듣는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 이야기였지만, 당사자는 이미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임신하면 언니도 알게 되실 거예요.]

임신을 하고 나니 그녀의 말이 뼈에 사무쳤다. 여자치고 큰 키에 슬쩍 봐도 보통 성격이 아니게 생긴 나는(첫인상이 차갑고 무표정하게 있으면 속된 말로 싸가지 없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다.) 다행히도 시비에 걸리는 등의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 적이 없지만, 주변의 임신부들은 대개 다들 한 번씩은 그런 실랑이를 벌이는 듯했다. 그런 실랑이 끝에 나오는 말은 다 짠 듯이 똑같았다.

임신이 무슨 벼슬이냐, 고.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게 환자인 게 무슨 벼슬이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째서 임신부에게는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솔직한 말로, 자신들도 엄마가 낳아주지 않았다면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임신한 입장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되면 내가 속상한 건 다른 문제다. 첫째로 나뿐만이 아니라 아기까지 싸잡아 불쾌한 취급을 당한 듯한 모멸감이 들고, 나아가서는 혹시 뱃속에 있는 내 아기가 그 이야기를 듣지는 않았을까 전전긍긍한다. 임신한 몸으로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과 대거리를 하는 것이 더 큰 스트레스라 다리가 저리고 눈앞이 어찔 대도 노약자석에는 앉지 않는다는 사람도 여럿 봤다. 벼슬이냐니, 벼슬 취급을 이렇게 박하게 하면서 무슨 큰소리냐고 되려 묻고 싶을 지경이다.

이렇게 임신부에게 야박하게 굴면서도, 출생률이 낮은 것은 다 아기를 낳지 않는 탓이란다.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2019년 기준 0% 대로 접어들었다. 10 커플이 결혼을 해도 아기를 낳는 커플은 1쌍이 안 된다는 뜻이다. 그 사람들이 왜 아기를 낳지 않는 건지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다. 그저 아기를 낳지 않아 줄어드는 인구, 그를 따라 적어지는 생산 인구 탓에 바닥나는 세금과 세금이 줄어들면 위태로워질 나라의 재정 상황에 관해서만 관심이 있다. 아기를 낳지 않는 이유? 젊은 사람들이 이기적이라 저 혼자 사는 것이 좋아 그렇다고들 말한다. 들을 때마다 귀도 막히고 코도 막히고 숨도 막힌다. 임신부를 대하는 태도들만 자세히 봐도 답이 나오는 문제 아닌가. 별별 얘기가 다 나오다 못해 지하철마다 찾아다니며 낙서와 훼손을 하는 사람까지 나오는 임신부 배려석, 임신부 배지를 차고 노약자석에 앉으면 어김없이 들리는 퉁명스러운 핀잔, 빈약하기 짝이 없는 임신부 지원 정책. 아기 하나 가졌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이 욕받이 취급을 당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임신을 결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다들 아기를 낳지 않아 난리라는데, 산부인과는 갈 때마다 대기가 수십 명이다. 담당 선생님은 임박한 출산 때문에 수술실로 올라가셔서 언제 내려오실지 기약이 없단다. 쉬는 날이 아니면 마음 놓고 진료를 보러 갈 수 없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 그 말은, 임신부와 갓 출산한 산모들로 북적거리는 산부인과에서 오늘 하루를 꼬박 보내야 한다는 말과 똑같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다려야만 했다. 말했다시피, 오늘이 아니면 나는 진료를 볼 수 없으니까. 그나마도 병원 로비에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것이 하나의 위안이었다.

출산한 뒤에 알고 보니,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출산까지 할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았다. 나조차 지하철 대여섯 정거장을 거쳐 그 병원을 찾아갔으니, 다른 사람들도 아마 다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심지어 다리 하나를 지나 강 너머에 산다는 분도 조리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진통이 와서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조금 더 있어보시라고 하다가, 사는 동네를 알리니 지금 출발하시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차를 타고도 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에 사시는 분이었다.) 남의 얘기 같이 어렵기만 했던 의료 인프라의 문제가 피부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건강한 아기를 안전하게 출산하기 위해, 차를 타고 20분을 달려와야 하는 동네에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의료 인프라의 문제는 아기를 출산한 이후에도 이어진다. 집 앞 산책만 나가도 소아과며 피부과, 이비인후과가 층마다 입주한 건물이 즐비한 동네에 사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괜찮은 소아과를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 타고 몇십 분을 달려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의료 인프라 뿐인가, 문화적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일주일에 한 번 아기를 데리고 집 앞 문화센터에 나와 전쟁 같은 육아에서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어린이집을 보내기 위해서 고달픈 살림에도 자차를 마련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차이조차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애 낳아 키우기 편한 세상에 애를 낳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되면 대꾸할 말을 찾기도 어렵다. (네가 애 낳고 키워봐라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긴 합니다만.)

상황이 이런데도 임신이 벼슬이냐 말하시는 분들께 대답해 드리고 싶다.


예, 이런 나라에서는 벼슬입니다. 그런데 벼슬 취급이 대체 왜 이 따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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