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임신성 당뇨와의 불쾌한 만남

by 리휜








나날이 아빠 붕어빵이 되어가던 시절의 초음파 사진




반짝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콩만 한 점일 뿐이던 생명체는 이제 팔다리까지 생긴 어엿한 사람의 형체가 되었다. 2주마다 방문하던 산부인과도 20주가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자 한 달에 한 번의 방문으로 줄어들었다. 여전히 양치하기는 괴롭지만 그래도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입덧이 호전되었고 온 몸을 짓누르던 피로감과 졸음도 사그라졌다. 몸이 덜 힘드니 마음도 따라 여유로워졌다. 어느새 봉곳하게 부분 아랫배가 마냥 기쁘기만 하던 나날이었다.

[엄마, 아기가 너무 빨리 크네요.]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아기가 너무 빨리 크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빨리 크면 안 되는 건가요? 묻자 선생님은 고개를 기울이시며 말했다.

[평균적으로 아기가 자라는 속도가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빨라요.]

무엇이든 주수에 맞게 자라는 것이 가장 좋지만, 가끔 너무 빠르게 커지는 아기들이 있다고 했다. 거대아라고 불리는 크기가 되면 일단 자연분만이 힘들 수도 있고, 난산이 될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그저 무럭무럭 자라면 좋은 줄로만 알았던 초보 임신부는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임당 검사를 바로 해봅시다.]

아아, 공포의 그 임당 검사. 심장이 한 계단 아래로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임신 준비를 하며 찾아본 글들 중에는 임신 중 가장 큰 난관이라는 몇 가지 검사들이 있었다. 임당 검사도 그중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검사였는데, 이 검사는 하는 것도 괴롭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도 힘들다는 말이 많은 그야말로 악명 높은 검사였다.

(검사 과정은 병원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저는 제 경험을 주관적으로 서술합니다.)

임당 검사는 정확한 검사 결과를 위해 예약을 하고, 적어도 공복을 2시간은 유지해야 했다. 예약한 시간에 병원을 방문하면 채혈실에서 포도당 시약을 주시고(엄청나게 달다. 탄산이 모두 빠진 오렌지맛 환타를 마시는 기분...), 약을 마신 뒤 정확히 한 시간 후에 채혈을 한다. 검사 결과가 바로 나오지는 않고, 며칠 뒤에 유선상으로 연락을 주신다고 하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아기가 빨리 큰다고 그러셨지만, 그냥 빨리 크는 애가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하지만 내 평온함은 이틀 뒤에 와장창 깨졌다.

[재검사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세상에. 재검사라니. 무슨 정신으로 재검사를 예약하고 전화를 끊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전화기를 집어 들고 임신성 당뇨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후기들은 온통 무시무시한 이야기뿐이었다. 흰밥은 못 먹는다, 과일도 안된다, 임신 전에도 안 하던 운동을 한다...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 인슐린을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보고 나자 울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주사를 무서워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매일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은 호불호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재검사 과정은 더욱 험난했다. 일단 전날 자정 이후로는 무조건 금식이다. 간호사 선생님은 가능하면 물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채혈을 한다. 그리고 또다시 마시는 포도당 시약. 시약까지 마시고 나면 이번에는 1시간 후, 2시간 후, 3시간 후까지 세 번의 채혈을 더 하게 된다. 양쪽 팔을 돌아가며 찔러대는 통에 양 팔은 구멍 투성이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3시간이 지겹기만 하다고 하던데, 나는 지겨운 줄도 느끼지 못했다. 기다리는 내내 임신성 당뇨를 검색하고 걱정하고, 또 다른 후기를 찾아보는 시간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재검사를 기다리며




재검까지 실시하면서도 나는 한 가닥 희망을 놓지 못했다. 저번에는 과일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이번에는 공복도 유지하고 시키는 대로 잘했으니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까. 하지만 내 바람이 무색하게도 결과는 나빴다. 아기가 빨리 자라는 이유 중에 한 가지가 임신성 당뇨라고 했다. 우울한 내 얼굴을 보며 담당 선생님은 그래도 수치가 아주 나쁜 편이 아니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이후의 진료는 내과에서 이루어졌다. 산부인과 바로 아래층에 있는 내과에 방문해 상담을 진행했다. 우울한 얼굴의 나에게 내과 선생님은 차분하고 편안한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임신성 당뇨의 경우, 발병 원인이 명확한 편은 아니라고 한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도 있고(나 같은 경우, 내 외할머니의 당뇨 병력 때문에 가족력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임신 후 식습관의 문제 때문에 생기기도 하며, 보통 가장 큰 원인은 호르몬의 문제라고 했다. 호르몬의 문제. 그 말은 산부인과에서 꽤 마법의 문장이다. 호르몬의 문제라는 말인즉슨, ‘임신부의 어려움과 고통이 상당하나 상태의 개선을 위한 별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으며 결국 시간이 지나 아기를 낳아야 해결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말이었다. 임신부는 아파서도 안 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의 경우, 지금은 인슐린 처방이 필요할 정도의 수치는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추적 관찰이 필요한 수치임에는 분명해서 앞으로 남은 임신 기간 내내 혈당 체크와 식이요법, 운동을 병행하며 수치를 조절해야 한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복 혈당, 하루 세끼 식사 후 2시간 뒤에 재는 식후 혈당까지 하루에 네 번을 체크하여 기록한 뒤 일주일마다 병원에 내원해 수치를 관찰해야 한다. 사실 그 당시 나는 하루 두 끼도 겨우 챙겨 먹는 불량 임신부(?)였는데 이제는 꼬박꼬박 밥때마다 식사를 챙겨야 하며, 심지어 이젠 식후 2시간 후에 혈당 체크까지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더욱 아찔한 것은, 이렇게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는데도 인슐린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에는 인슐린 주사를 처방받아 맞아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설명만 듣는데도 정신이 아득히 먼 곳을 헤맸다.




남은 임신 기간 내내 꾸준히 해야만 하는 숙제를 받았다




[임신성 당뇨는 보통 출산 이후에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혈당 관리는 꾸준히 하셔야 해요.]

임신성 당뇨에 걸렸던 산모는 출산 이후에도 2형 당뇨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특히 나는 가족력이 있으니 더욱 신경 쓰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겨우 버티고 서 있던 마음이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성처럼 우르르 주저앉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임신을 결심했는데, 임신을 한 탓에 나는 다른 사람보다 쉽게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병이라는 게 걸리고 싶어 걸리는 것도 아니고 걸린다고 해서 다들 비참하게 죽는 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그 생각이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임신 이후 단 한 번도 임신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임신을 결심했던 것이 너무 성급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위험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신중했을 텐데. 뱃속에서 나날이 크는 생명에 기뻐했던 것이 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사실 임신 중의 위협은 임신성 당뇨뿐만이 아니다. 임신성 당뇨를 방치하거나 너무 늦게 알게 되는 경우, 임신성 당뇨는 치명적인 합병증들을 유발하는 임신 중독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뿐인가, 아기를 낳고 난 이후 몸속에 남아있는 오로가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거나 청결히 관리되지 못하면 세균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에도 걸릴 수 있으며 떨어지는 칼슘 수치를 제대로 회복해주지 않으면 골다공증에 걸릴 위험도 두배 넘게 뛴다. 이쯤 되면 임신과 출산은 행복한 가족계획의 시작이 아니라 역경과 고난의 순례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병원을 나오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울기까지 하면 안 그래도 괴로운 마음이 마구잡이로 엎어져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내 현실이 왜 이렇게 모질까. 난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울먹이는 내 목소리를 들은 남편은 그 날의 일도 뒤로 미룬 채 집으로 달려와 날 안아주었다.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그 말이 공허한 위로처럼 들렸지만 나는 그저 남편을 마주 안았다. 그 순간의 우리에게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도 상처일 것만 같아서.

그 날은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다. 잠들지 못하는 그 시간 내내, 나는 반짝이의 초음파 동영상과 사진들을 봤다. 배를 어루만지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바닥으로 가라앉기만 하던 마음이 조금씩 위로 떠올랐다. 그래, 할 수 있어. 이렇게 작은 애도 크게 심장을 쿵쾅거리며 내 안에서 살려고 애를 쓰는 걸. 나도 할 수 있어. 그 밤은 아직도 내게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의 태교 일기



내게 반짝이가 찾아온 지 오늘로 딱 120일이 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지만 내 생활은 천지가 뒤집혔다.

맘먹고 앉으면 2천 자는 썼던 집중력은 날이 다르게 떨어져 이제는 100자를 쓰면 많이 쓴다.
좀 전에 보았던 사전의 단어가 창을 끄면 기억이 안 난다.
심지어, 쓰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커피와 콜라를 기분 좋게 마셔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 달에 두 번은 갔었던 초밥집도, 요즘이 철이라는 꽃게장도 남의 얘기다.
임신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먹던 것도 이젠 먼저 검색해보지 않으면 입에 넣지 못한다.
먹으면 안 될까 봐, 혹시 안 좋달까봐.

안 그래도 무거웠던 가슴은 이제 거의 멜론 두 개 정도의 무게가 되어 어깨를 짓누른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해서 이젠 정자세로 누워 자면 새벽에 잠을 깬다.
아기를 위해 먹어야 한다는 철분제는 안 그래도 자주 가는 편이 아닌 화장실을 더욱 괴롭게 한다.

임신을 계획할 때, 나는 많은 것을 각오했고 또 버릴 마음을 먹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도 막상 마주친 현실은 이토록 녹록지 않다.
아가를 위해 많은 희생을 각오했다 생각했지만, 정작 내가 생각한 10가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정말 욕심을 버려야 하는 일은 300개가 넘는다.
그것이 가끔 이렇게, 힘이 든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막상 병원 침대에 누워 기계 너머로 들리는 힘찬 심장 소리와 작은 꼼지락 거림을 보면
그런 것들은 그저, 순식간에 저 먼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다.
점만큼이나 작아져서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된다.
기가 막힌 일이다.
그렇게 즐겁던 글을 못쓰고, 맛있는 것도 못 먹는 데도.
멀쩡하던 몸이 뒤틀리고 휘어지는데도.
그런데도 그것이 순식간에 '별것 아닌 일'이 되어버리는 기적이, 까만 화면 너머에 웅크리고 있다.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그래, 까짓 거 대수냐. 생각하게 되어버린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 일은 내게 아주 커다란 대수였는데.

좋은 생각만 하라는 주위의 말이, 그런 건 먹지 말라는 염려가,
엄마는 다들 그렇다고, 내가 참아야 한다는 섣부른 일반화가
유독 서운하고 복받치는 오늘 같은 날에는.
그냥 한없이 초음파 사진과 동영상을 본다.
아마 지금도 내 뱃속에서 작은 손발을 꼼지락거릴, 우리 반짝이.

그래, 엄마는 괜찮아. 다 괜찮아, 반짝아.
얼굴이 또 스르르 풀어진다.

사랑한다, 아가.




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이때 즈음이었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임신과 출산을 시작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내 경험담을 나누고 싶었다. 어느 정도의 각오를 했다고 생각했던 나마저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남들은 더욱 힘들지 않을까. 엄마는 다들 그렇다는 말에 자신의 모진 경험을 마음에 묻고 사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런 건 너무 슬프지 않은가. 그러니 하다 못해 나라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목소리를 내 보는 건 어떨까 했다.



때로는 힘든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도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임신이 벼슬이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