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도구상자

by 코뿔소

저는 생각이 많은 편입니다. 길지는 않은데 종종 복잡합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구구절절한 생각들을 다루는 도구상자가 생겼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구구절절한 생각을 품고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어딘가에서 비슷한 밤을 보내는 분들에게 이 도구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 권해봅니다.


1. 후회가 멈추지 않을 때


후회라는 건 왜 생기는 걸까요?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진화해 왔잖아요. 그 과정에서 후회라는 반응도 같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실수를 곱씹어보고, 같은 상황이 왔을 때는 피하려는 거죠. 그렇다면 후회가 오래가는 건 무슨 뜻일까요? 아직 그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는, 성장 전의 상태라는 뜻이죠. 소화되지 못하고, 아직 받아먹을 영양분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결국 후회가 사라지는 시점은, ‘다시는 안 한다’는 확신이 생길 때입니다. 게으름이 후회된다면 서랍 정리든 이력서 고치기든 작은 성실함을 더해보세요. 나약함이 후회된다면 오늘은 겁나는 선택을 눈 딱 감고 해 보시고요. 조금씩 후회는 줄어듭니다.



2. 선명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이리저리 해집을 때


고민은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정답이 필요한 고민. 문장으로 명확하게 정리되죠. 예를 들어 ‘회사에 계속 다닐까, 그만둘까’ 이런 건 정답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근데 또 어떤 날은 머릿속에 조각난 생각들이 마구 튑니다. 비문과 단어만 덩그러니 떠다니고, 구체적인 질문조차 안 되는 거죠. 이럴 땐 해답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만약 지금 팔이 부러졌다면 그 아픔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겠죠. 그런데 건강하면 온갖 생각이 다 찾아옵니다. ‘아, 나 지금 건강하구나.’ 이렇게 결론 내리면 됩니다. 그리고 그냥 내일 점심 뭐 먹을지 고민하다가 잠드는 거죠. 중요한 건 앞으로 오는 것들이니까요.



3. 무언가 단단히 고장 난 것 같지만 그냥 다 모르겠을 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고 그냥 다 꼬여 있는 것 같나요. 그럴 땐 ‘증상’과 ‘문제’를 나눠보세요. 기침이나 콧물은 증상입니다. 증상을 잡으려면 입이나 코를 막아버리면 돼요.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감기에 걸린 거죠. 진짜 해결책은 감기를 치료하는 겁니다. 잘 정리된 문제는 그 안에 해결책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저는 먼저 모든 증상을 적어보려고 해요. 비슷한 증상들이 묶이고(정신이 없다 - 놓치는 일이 생긴다) 인과관계가 정리되면(시간이 없다 <- 일이 너무 많다) 결국 하나의 원인으로 모입니다. 거기서부터 풀어보시면 좋습니다.



4. 결정을 하고 싶지만 자꾸만 마음이 바뀔 때.


그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결정해 보세요. 아침에, 한밤에, 한가할 때, 바쁠 때, 술 한 잔 했을 때, 월요일에도, 일요일에도. 그 결정을 다 모아놓고,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나’ 일 때 내린 결정만 남겨두세요. 어렵다면 적어도 싫지 않은 모습들만 남겨두세요. 만장일치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수결로 이긴 결정이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일은 없습니다.



5. 뭘 해야 할지는 알겠는데 확신이 없어 몸이 안 움직일 때


그럼 먼저 아래로 파고들어가보죠. ‘왜?’를 열 번쯤 물어보는 거예요. 이직을 해야 하는데 못 하겠다. 왜? 거기도 별로일 것 같다. 왜? 그 회사를 잘 모른다 왜? 아는 사람이 없다 … 이렇게요. 이 예시로 보면 ‘정보가 없어서’ 같은 단순한 이유로 쪼개집니다. 그럼 작게 실천할 일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로도 가보세요. ‘진짜 자신이 없나?’ ‘그게 진짜 이유인가?’ ‘아무것도 안 하는 지금이 더 좋은 건 아닌가?’ 이렇게요. 질문을 키우면, 답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6. 잠이 안 올 때


글을 써보세요. 미리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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