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엄마 소원이야”
어릴 적 제가 뭔가를 완강히 거부할 때면,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소원들은 참 사소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발레 오디션에 나가보라고 하셨습니다. “한 시간이면 끝난다”라고 덧붙이시며. 중학교 때는 사과대추 하나를 먹어보라 하셨고, 고등학교 때는 아침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국제 봉사활동 신청서를 내보라고 하셨습니다. “떨어지면 어때”라는 말과 함께.
그중에서도 가장 기묘한 요청은 발레였습니다. 배운 적도 없는데, <호두까기 인형>의 아역 오디션을 보고 오라는 소원.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나갔고, ‘발레는 하나도 모르지만 박자는 기가 막히게 맞춘다’는 평가를 받고 프리츠 역을 맡았습니다. 쫄쫄이 타이즈가 민망해서 이후에 그만두긴 했지만, 카탈로그에 있는 제 사진은 여전히 웃긴 추억입니다.
적어두고 보니 어머니의 작은 꿈의 목록 같기도 합니다. 말없이 이어진 바람들, 조용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사랑의 나열입니다. 다행히 그 소원들은 하나씩 이뤄졌습니다. 사과대추는 안 먹겠다고 버틴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아삭하고 달콤했습니다. 지금도 좋아합니다. 아침밥을 먹고 가라 하신 날은 제가 처음으로 “오늘은 안 먹겠다”라고 말했던 날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날 아침을 굶고 나갔다면 이후로도 계속 그랬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봉사활동은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사막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자는 황당한 계획에 올라탄 그날 이후로, 저는 여전히 사막으로 향하는 새벽 기차에 몸을 싣고 있는 듯합니다.
생각할수록 어머니의 소원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습니다. 그 소원들은 결국, 제 삶 안 어딘가에 하나라도 남아 평생의 즐거움이 되기를 바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했던 것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맷집을 길러주신 일입니다. 길지 않지만 살아보니 그 맷집은 꼭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익숙한 곳에 머무르려 발버둥 쳐도 언젠가는 가보지 않은 길을 밟아야만 합니다. 사과대추 같은 작은 모험부터 손 잡고 함께 가주셨기에 이제는 다른 이를 살피며 같이 걷는 법도 압니다. 어머니의 소원은 참 오래 걸려 이뤄졌습니다.
요즘은 제가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현명한 선택을 건넬 수 있을까요. 제가 제시하는 길이 진정 좋은 길일까요. ‘이 길이 결국 너를 행복하게 할 거야’라는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직접 겪어보니 확신이 오는 몇 가지 경험들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그것을 20여 년 떨어진 생명에게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낯선 경험들의 결실은 대부분 훗날에야 도착하는 것인데, 그 사이의 긴 의심과 갈등을 견딜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달콤한 위로를 더 좋아하니까요. 사실 대학 시절 봉사활동은 설득당하는 데 1년 넘게 걸렸습니다. 대화를 끝내고 싶어 쏘아붙인 어느 날이 떠오릅니다.
"국제봉사 좋은 거 알아. 스펙도 사람도 좋지. 근데 난 지금 그런 꿈꾸고 싶지 않아. 난 대단하고 싶지 않아. 그냥 살래."
진심이었지만, 지나가는 생각을 단단하게 뭉쳐 던진 일은 지금도 마음에 남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말없이 기다리셨습니다. 제 아이가 그런 말을 한다면, 저는 견딜 수 있을까요. 포기하고 싶다며 등을 돌릴 때, 저는 어머니처럼 기다릴 수 있을까요. 쉬운 선택은 언제나 달콤하고, 좋은 선택은 언제나 가시 투성이 같습니다. 며칠 간의 어색한 침묵을 감수하면서도, ‘아빠 최고’라는 말을 듣는 쉬운 선택을 참을 수 있을까요. 이제는 압니다. 소원이란 얼마나 긴 시간을 품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침묵과 불안을 안고 있는지요.
답이 나오지 않아 당사자의 입장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느 저녁, 어머니께 과거의 고집들을 해명하듯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내가 막 안 하겠다고 할 때,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 기억나?"
어머니의 답변은 이 글의 결론을, 그리고 앞으로의 지침을 간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별생각 없었는데? 겁나 잘난 체하네 했어"
별 일 아니었습니다. 사과대추 한 알과 함께 달콤하게 삼키면 되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