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판이 안 좋을 때 위험을 감수하고 두는 한 수, 국면 전환을 꾀하는 그 한 수를 꼼수 또는 묘수라고 부릅니다. 바둑판은 사람 사는 모양과 참 닮았습니다. 궁지에 몰릴 때, 아무리 보아도 상황을 타개할 수가 안 보일 때, 우리 역시 묘수를 찾습니다.
저는 종종 역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자꾸만 묘수를 찾게 되는 날, 그때는 이미 제가 벼랑 끝에 서 있다는 뜻이구나 하고요. 형세가 유리하면 신이 나서 그간의 고생은 다 잊은 채 판을 굳히려 애씁니다. 반대로 판이 불리해지면 방금 둔 수조차 밉고 그 작은 투쟁들이 무슨 의미였나 싶습니다. 대국을 뒤집을 신의 한 수를 상상하면서 말이지요.
최근 들어 잘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다’는 식의 표현은 웬만해선 쓰지 않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NN개 중 단 한 개도 매끄럽게 매듭지어지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명운이 달려있기도 하고, 제 커리어가 달려있기도 합니다. 그릇이 작은 탓인지 변명과 후회가 잇따릅니다. 앞에서는 어디까지 노력했는지를 따져 설명하고, 뒤에서는 이렇게 했더라면 더 나았을 거라 상상합니다. 그런 정신승리야말로 마음이 두는 묘수이겠지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제가 만든 작업물이 어딘가에서 혹평을 받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유료 서비스를 파는 상세페이지가 도무지 구매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 저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크롤 동선과 구매 버튼이 어긋나 있고, ‘왜 사야 하는지’에 대한 구매자 입장에서의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기초적인, 초보적인 실수였습니다. 남이 만들었더라면 저 역시 똑같이 혹평했을 겁니다. 그건 디자이너 만든.. 그리고 기획대로 개발이 안된.. 같은 변명이 올라오려다 멈췄습니다. 결국 모든 책임을 지려고 있는 자리가 바로 제 자리라는 것을요.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제가 제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제가 만든 RPSF라는 문제 해결 도구가 있습니다. 낯선 일도 이 프로세스대로만 가면 중간 이상은 해냅니다. Research, Problem, Solution, Feedback. 사례를 조사하고, 현재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실행한 뒤, 결과를 점검하는 순서.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일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S에서 시작해 S로 끝납니다. ‘보아하니(R, P) 이렇게 하면(S) 될 것 같은데(F)’ 그리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언제나 허술합니다. 제가 만든 상세페이지처럼요.
묘수는 정수로 받는다. 묘수를 이기는 바둑의 명언입니다. 상황이 불리할수록 정직하게 받아야 합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정수로 이겨낸 수많은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이겨내보려 합니다. 그렇지만 한풀이 한 번만 하겠습니다.
힘이 없는데 그럴수록 더 다잡고 하라는 게 무슨 헛소리냐 돈이 없을 때는 돈을 벌면 됩니다같은 개소리아니냐 운은 왜 없을 때 한꺼번에 없는거임 좀 분배하면 안 되나 저번에 바지에서 5만 원짜리 찾은거 다시 넣을 테니까 회사에 운 좀 주면 안되나 운동도 2주째 못가서 우울증걸릴 것 같은데 와 진짜 식욕도 없고 온몸에 힘이 없다 나랑 아이큐 비슷한 사람이랑 티키타카 했으면 좋겠다 제일 열받는게 유인원같은 소리 반박하려고 힘빼는거다 제발 밑도끝도 없는 아이템 아이디어라도 들고와가지고 툭 던져놓고 어때요 하지마 원래 잘 만든건 칭찬하기 쉬움 잘만들어서 뭘 잘했는지도 너무 잘보임 근데 머저리같은거 피드백하는게 제일 힘듦 그건 고급 지식노동이야 이것은 똥입니다를 설명하기 위해 문서 개요와 설득 순서를 짜고있는 내가 힘이 나겠니 세상에 나한테 뭐 달라는 인간밖에 없고 뭐 해준다는 사람이 아 있긴하네 참 감사합니다 배고프다
고생이 많다. 그냥 읏차 하고 일어나면 되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