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나의 주거생활과 청년의 주거생활.

by 강효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나의 인생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성인이 되면, 취업을 하면, 바로 이 집을 떠날 것이다. 그렇게 나는 21살에 취업했고, 23살에 독립했다. 서울에 본가가 있는, 서울에 취업을 한 성인 여성으로서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청년전세임대 지원을 받은 나에게, 서둘러 본가를 떠나야 하는 나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져 4평 원룸을 찾아냈다. 본가에서 5분 떨어진 곳이었다.(동네를 아주 잘 알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뒤진 겁니다. 낯선 동네로 이사 갈 땐 반드시 부동산 투어를 하세요!)

그렇게 나는 약 1년 반을 이 집에서 보냈다. 맨 처음 눈을 찌푸리게 했던 노란 벽지는 이제 익숙해졌고, 이곳저곳에 내 흔적이 묻어 열심히 지워내야 한다. 곰팡이가 핀 창틀에 식초를 뿌리는데 웃음이 나왔다. 나, 이게 뭐 하는 거지.

본가에서 겨우 5분 떨어진 곳이었으니, 내 일상은 독립한 것 빼고는 다르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본가는 아파트 단지였고, 내가 지금 사는 곳은 빌라촌이다. 이 동네는 정말 신기한 구석이 있다. 80년대부터 있었을 법한 가게들과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가 공존한다. 나는 두 가게를 모두 이용하는 어중간한 mz세대가 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독립한 빌라에서 큰 문제를 겪고 있진 않다. 전기세가 옆집과 바뀌어서 고지되고, 위층 소음으로 경찰을 한 번 부른 적은 있지만……다른 집처럼 내가 없는 사이 누가 방에 들어온다던가, 장판 밑에서 바퀴벌레가 우수수 튀어나오던가 하는 문제는 없으니 나름 만족하고 지내고 있다. 전세사기로 흉흉한 세상이지만 내 전세금은 나랏돈이니 그건 나라에서 알아서 할 문제고……. 수도도 펑펑 잘 나오고, 난방도 잘 된다. 햇빛도 눈이 부시게 들어온다. 다 좋은데, 정말 다 좋은데 단점은 너무 좁다는 것. 그거 딱 하나뿐이었다.


"그게 제일 큰 문제 아니야?"


좁은 것 빼고는 다 괜찮다고 말했더니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반문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좁은 건 정말 큰 문제지. 하지만, 다른 원룸도 크게 사정이 다르진 않은 걸. 그나마 우리 집은 가벽이 아닌 제대로 된 벽이라는 게 위안삼을 포인트랄까.

청년전세임대와 동시에 역세권 청년주택도 신청했었다. 어떻게 해서든 독립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살 혹은 독립뿐이었다. 그렇다면, 독립을 해야겠지. 평수도 보지 않고 역세권 청년주택을 신청했다. 나중에 확인한 방 하나의 크기는 5평 정도였다. 그것도 크게 나온 거라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저녁에 라면 먹으면 그날은 라면 덮고 자는 거임 - 독립일기 중

4평 원룸에 1년 반을 살며 했던 생각은, 좁아도 너무 좁다는 것이었다. 정말, 정말 극도의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면 이곳은 너무 좁다. 자까 작가의 말대로 라면을 끓이면 라면을 덮고 자고, 떡볶이를 먹으면 떡볶이를 끌어안고 잠들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냉장고가 윙윙대고, 널어놓은 빨래는 마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취하면서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 집에 건조기가 있는 사람일 거란 편견이 생겼다.

청년주택을 비난하는 글엔 꼭,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건데 얼마나 많은 평수를 바라는 거냐, 그만한 평수도 감지덕지다.라는 부류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열렬히 비난하는 쪽이다. 4평 원룸에 만족하며 살고 있고 재계약을 할 예정이지만, 사람이 살기에 4평은, 5평은 너무 좁다. 서울의 땅이니 어쩔 수 없다 해도 너무 좁다. 특히 청년주택이라면, 나라에서 청년에게 허락된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거라면, 5평은 너무나도 좁다.


비건식을 공부하고 비건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농장 문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 수밖에 없다. 청년주택을 닭장이라고 비하하는 것처럼, 수십 마리의 닭이 한 평도 안되어 보이는 공간에 처박혀 있고, 한 마리 소에게 허락되는 공간은 자기 몸보다 5cm 정도 더 큰 울타리 안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절망을 학습한다. 그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당장에 청년주택을 20평 아파트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차피 내가 이런 글을 써봤자 청년주택의 평수는 바뀌지 않을 테고, 3평으로 줄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배부른 청년이라 비난할 테고, 서울 하늘에 몸 뉘일 공간만 있으면 됐지 라는 말을 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던질 비난은 우리가 미리 생각했다는 것이다.

4평 원룸에 살면서 왜 우울한 적이 없었겠는가. 더군다나 나는 우울증 환자인데. 너무 좁아, 나 평생 이 원룸에서 썩어 나는 건가. 그렇지만 이런 원룸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너무 우울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누워있거나 서있는 것 밖에 없어. 그래도 서울이잖아, 나가서 놀면 되잖아. 당신이 비난할 모든 부분은 이미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생각했다. 그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 좁은 집에서, 몰려오는 불안감과 절망을 밀어내기 위해서.


당분간 넓은 집으로 이사 갈 예정도 없고, 이사 갈 수도 없다. 나는 한동안 이 원룸에서 누워서 지내게 될 것이다. 좁은 것만 빼고 다 괜찮다며, 이웃도 조용하고 집 앞에 마을버스도 다닌다고 자랑하며 지낼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이 집은 너무 좁다.


(제목 4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는 남경지 작가님의 독립출판물 5평 집에서 뭐 하고 지내? 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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