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즐겨보던 웹툰에서 이런 말-속담이 나왔다. 인생은 주머니 속의 이어폰이다. 딱히 아무것도 안 했는데 꼬여버린다는 뜻이다. 이따금 이 속담이 떠오를 때마다 무선 이어폰의 사용이 유선 이어폰보다 우세한 지금은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생각해 보니, 오히려 지금 시대야말로 적격인 속담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의 인생은 줄이어폰이지만 누군가의 인생은 무선 이어폰이겠지. 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완전 유선 이어폰이다. 아니, 유선 이어폰이었다. 정말 완벽하게 인생이 꼬여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24년의 시간 중 22년은 부모님이 꼬아대는 내 줄을 푸는 데 사용했다. 더 이상 줄을 풀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뒤엔 이어폰을 버려버렸다. 그리고 무선 이어폰으로 삶을 옮겼다. 무선 이어폰이 가져다준 자유처럼-팔이 줄에, 머리카락에 걸리지 않는 자유, 꼬여버려서 푸는데 한참 낑낑대지 않을 자유-독립이 가져다준 자유를 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선 이어폰은 선이 꼬일 수 없는 것처럼 부모님이 나를 괴롭힐 일은 없었다. 다만, 무선 이어폰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충전을 해야 했다.
무선 이어폰의 삶, 그러니까 독립한 이후의 삶은 완벽한 방전의 시간이었다. 22년 동안 살아남는데 급급해서 나를 충전하는 방법 따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자유를 맞이하는 건 충전기도 없이 배터리가 20% 남은 이어폰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금방 방전될 수밖에 없는데, 나는 신나서 남은 배터리도 확인하지 않고 이곳저곳에 에너지를 남발했다. 그리고 내 에너지는 완전히 방전됐다.
뭐든지 방전 상태로 방치하면 결국엔 망가져서 충전기를 꽂더라도 충전되지 않는다. 스마트폰도, 무선 이어폰도, 닌텐도 스위치도 마찬가지다. 20%의 배터리를 소진해 버린 나는 열심히 충전기를 찾아 나섰다. 중독인 것 마냥 책을 사들였고, SNS에 집착했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에 안락함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것도 충전기가 되어주진 못했다. 독서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SNS는 지능이 떨어지는 게 시시각각 느껴졌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엔 큰 대가가 따랐다. 폭력의, 욕설의, 고성방가의 자리를 빨래가, 쓰레기가, 물 때와 곰팡이가 차지했다. 문득 내 방이 쓰레기통처럼 느껴진 순간, 나는 환멸을 느꼈다.
자취에 대한 로망은 애초부터 없었다. 본가에서 나오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내가 살고 싶었던 집은 사람 사는 곳이지, 쓰레기통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70L짜리 봉투를 사서 분리수거를 했다. 빨래를 돌리고 반려건조대-우리 집은 빨래건조대를 다 펴면 화장실을 갈 수 없다-를 펼쳤다. 곰팡이에 식초를 뿌리고 솔을 사 와 바닥을 박박 닦았다. 하수구에 걸린 머리카락을 치우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정리함을 사 와 바닥에 널브러진 책을 주워 담았다. 방바닥이 드러나고 싱크대의 그릇들이 건조대로 옮겨졌다. 조금은 사람 사는 집처럼 변한 내 방 침대 위에서, 나는 조금 울었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완충된 무선 이어폰에, 보조배터리까지 달고 있겠지.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나는 내 충전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더 이상 줄이 꼬일 일은 없는 무선 이어폰의 삶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운아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조금은 충전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