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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효설 Aug 12. 2023

D+20. 미루미와 완벽주의

하지만 실천하는 건 너무 어려운

메일함에 뜨는 엄청난 숫자. 안읽은 뉴스레터가 쌓이고 쌓였다. '언젠가 분야별로 다시 읽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삭제해버리는 게 환경에 좋다는 걸 알면서도 섣불리 삭제하지 않는다. 나는 어쩌다 뉴스레터까지 아까워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뉴스레터 읽기만 미루는 게 아니다. 방청소, 쓰레기 버리기 등 기본적인 집안일부터 생업, 취미생활까지 미뤄버린다. 미루고 남는 시간에 뭐하냐고요? 트위터하고, 스펀지밥 봅니다……. 나라고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싶진 않다. 아니, 세상에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한국인으로 태어났으면 매분매초를 알차고 의미있게 보내야하지 않겠는가. 물론 실제로 그렇게 보내면 번아웃 오기 십상이다. 휴식과 일, 취미생활이 적절히 섞인 일상을 살아가야하지만, 실제로 그걸 잘 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야하는데라고 생각하며 SNS를 새로고침하고 있을 거다. 그래야한다. 

 큰 맘먹고 일정을 정리하기 위해 노션을 켰지만, 거기까지였다. 노션을 조금 만지다 다시 SNS를 켰다. BGM이 문제인가 싶어 재생목록을 바꾸고, 웹툰도 조금 보고 스트레칭도 했다. 그리고 노션을 다시 만지긴……커녕 다시 SNS를 켰다. 결국 오늘 하루종일 만든 건 달력 한 장.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달력을 보면서 또 나 자신을, 트위터를, 아니 스마트폰의 존재 자체를 원망한다. 잡스! 당신은 발명해선 안될 물건을 발명했어요! 아니, 잡스를 뭐라할 게 아니지. SNS가 문제라고, 무한 스크롤 발명한 녀석 나와! 실컷 어플리케이션의 발전을 욕하고 나면 돌아오는 건 없다. 아까운 시간만 더 흘러있을 뿐이다. 다시 노션에 집중하려하면 스물스물 딴생각이 올라온다. 잘 쓰지도 못하는 노션보다 엑셀에 정리하는 게 낫지 않아? 아니면 다이어리에 정리하는 건?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다 결국 노션을 껐다. 엑셀에도, 다이어리에도 일정을 정리하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 딴짓을 한다. 

 

 미룬다는 건 계속 재보는걸까? 오늘 안에 브런치 글을 올리면 되니까, 10시정도 까진 여유가 있어. 라고 생각하고, 노션에 일정 정리 꼭 오늘 안해도 되는거잖아? 내일 해도 된다고.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새마음으로 월요일 계획부터 짜자! 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 미루지 않는 방법을 아시는 분, 어디 없나요?

 이렇게 사는 것에도 문제가 없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에겐 문제가 많다. 일단 설거지거리가 쌓인 저 개수대부터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임보하듯 도서관에서 빌리고 그대로 다시 반납하는 것도, 정리를 너무 안해서 책으로 벽이 쌓인 이 책상도! 모두 다 문제다. 

 미루지 않는 법에 대해 유튜브에 검색하면 정말 많은 동영상이 나온다. 자주 보이는 키워드는 '완벽주의'다. 완벽주의가 없는 한국인이 어딨겠냐만, 나에게도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방청소를 시작하면 기깔나게 치워야할 것 같고, 책상을 치웠다면 그 위엔 노트북만 있어야한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7권을 다 읽고 서평까지 완벽하게 써내야한다는 부담감. 결국 완벽해야한다는 부담감때문에 나는 할 일을 미루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SNS나 킬링타임 애니메이션에 빠지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도. 잃을 건 시간 뿐이고 내가 얻을 건 없으니까. 미루는 습관은 결국 완벽주의 성향에서 나오는 구나. 오늘도 글을 쓰며 한 가지 배웠다.  완벽주의 성향을 깨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다.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 내가 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이유도 조금씩 꾸준히 했기 때문에, 그 결과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방법이 간단하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하는 건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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