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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효설 Aug 19. 2023

D+27. 비싼 노트를 쓰세요

가성비를 따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이 글은 아무 이유 없이 몰스킨 노트를 지른 나의 자기 합리화 글이다.


 몰스킨 노트를 샀다. 노트가 떨어지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집에 굴러다니는 게 노트며 수첩인데, 굳이 몰스킨 노트를 다시 샀다. 언젠가 기필코 저 노트를 손에 넣고 말리라. 그게 오늘이었다. 

 몰스킨. 어쩐지 글을 쓴다면 한 권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노트. 기록 관련된 책을 보면 꼭 빠지지 않는 '나는 특별한 노트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몰스킨 노트를 사용했다'라는 문장. 아니, 몰스킨은 이미 가격만으로 특별하다고요! 그도 그럴 것이 몰스킨은 클래식에 가장 작은 사이즈를 기준으로 한다 해도 다이소에 가면 그와 비슷한 노트 6권은 살 수 있는 가격이다. '가성비'를 따진다면 그야말로 미친 짓이라고! 나는 늘 가성비를 따지는 마음에 패배해 왔다. 이거 하나면 저거 몇 갠데. 쉽게 포기하기라도 하면 다행이건만, 몰스킨을 포기하지도 못했다.

 몰스킨을 포기 못하는 이유가 뭘까. 앞서 말했던 글 쓰는 사람이라면……이라는 상징성이 가장 컸다. 좋아하는 작가님도, 그냥 읽은 책에서도 무심하게 꺼내는 몰스킨이 부러웠다. 꼭 몰스킨을 써야 작가가 될 수 있나? 그냥 다이소 노트로도 잘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어쩌면 상징성을 얻고 싶기보단 반발심이, 호기심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몰스킨이 대체 얼마나 좋길래. 내가 직접 써보고 판단하겠어! 그 마음이 충동구매를 이끌어냈다. 


 그래서 몰스킨이 어떻냐고? 잉크를 쫙쫙 흡수한다던가, 종이의 질감이 뛰어나진 않다. 사실 노트 자체는 다이소 노트와 크게 차이점을 모르겠다……. 몰스킨 본사에서 보면 날 고소할지도 모르겠지만, 첫 장을 써본 나의 소감은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왜 몰스킨 노트를 쓰라고 하냐면, 그야말로 몰스킨이 주는 상징성 때문이다.  잠깐, 끄지 말고 계속 읽어주세요. 쉽게 말해서 몰스킨의 가격이 핵심이란 말입니다. 여러분은 천 원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나요? 나는 천 원을, 그러니까 천 원짜리 노트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적더라도 다시 쳐다보지 않거나, 심하겐 잃어버리는 일도 잦았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에 적는 건 '멋'이 없다며 계속 수첩을 고집했다. 이런 녀석에게 답은 비싼 물건!이다. 가격 때문에 노트를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고, 뭐라도 더 쓰고 싶어 지고, 아무 데나 굴리고 싶지 않단 말이다! 

 나에겐 각인 문구를 새긴 만년필이 있는데, 나는 이 녀석을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메모할 때뿐만 아니라 모닝페이지, 다이어리 작성 시에도 사용하는데 이젠 손에 익어 다른 펜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몽블랑 펜이라도 장만했냐고? 그냥 평범한 라미 사파리 펜이다. 가격은 삼만 오천 원 정도. 그러나 이 삼만 오천 원도 가성비를 따지면 구매하기 힘든 가격이다. 하지만 애착 필기구를 마련하고 싶단 생각에 펜을 구매했고, 크게 만족하고 있다. 꼭 가성비를 따지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일단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몰스킨이 갖는 상징성은 가격뿐만이 아니다. 앞서 말했던 몰스킨을 써야 작가가 될 수 있나?라는 질문의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바로 나 자신을 특별하게 여길 수 있다. 비싼 물건을 쓰는 나, 멋있기도 하고 소중하다. 물론 카푸어처럼 극단적인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만 원에 나를 소중히 여길 수 있다면 이게 가성비 아닐까? 내가 가성비를 따지지 않고 비싼 걸 고집하는 영역이 있는데, 그건 바로 잠옷이다. 잠옷만큼은 값이나 캐릭터를 따라가지 않는다.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단 이유로 샀던 잠옷이 다 해져버린 경험 이후로 가성비를 따지는 습관을 버렸다. 그리고 비싸고 편한 잠옷을 구매했다. 후기는? 샤워를 하고 잠옷을 입을 때마다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최근엔 이 습관을 샤워를 할 때까지로 넓혀, 샴푸나 컨디셔너도 마트에서 세일하는 물건이 아닌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려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이런 마음으로 비싼 물건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도 넘쳐나는 세상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 소비습관을 보고 나를 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동기'를 돈으로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적합한 소비가 아닐까? 적당한 선에서 적당히 나를 사랑하기, 내가 생각하는 바른 소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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