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등학교 때 개근상을 타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잦은 잔병치레 덕분이었다. 반 아이들이 차례로 불려 나가 떼거리로 상장 한 장씩을 다 받을 때 나는 멀뚱히 앉아 있었고, 끝내 내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무언가를 뛰어나게 잘해야 받을 수 있는 학업성취도 상이나 글짓기, 예체능 상보다 더 부러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6년 개근상이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속까지 쓰릴 지경이었다. 6년짜리 대사업을 처음부터 놓쳤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6년 개근상은 도저히 내가 근접할 수 없는 멀리 있는 고지였다.
그때 느낀 분함 때문일까. 개근상이 없는 직장에서 개근상에 맺힌 한을 풀고 있다. 조퇴할 값에라도 일단 회사는 가고 보자가 몸에 배어 버렸으니.
6년 개근하는 초등학생은 있어도 6년 개근하는 직장인은 없다. 적어도 내가 다녔던 회사의 모든 근로자들은 그랬다. 쉬고 싶어서, 몸이 안 좋아서, 집안의 경조사 등등 개근하지 못할 이유는 많았다. 회사에서도 그 점을 인정하는지 장기근속에 대한 포상은 있어도 개근은 별로 따지지 않는다. 단, 인원수 빤한 중소기업 근태관리 담당자는 알 수 도 있다. 학생은 상을 못 받는다에서 끝나지만, 회사원은 근태문제가 인사고과와 관련이 있으므로 가능한 담당자의 눈에 띄지 않는 편이 좋다.
직장 다니다 보면 아플 일이 있다. 직장생활과 관계있는 아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얼굴에 뭐가 나서 피부과에 간다. 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왜 피부가 일어난 걸까. 생각해보니, 아래께 현장에서 마신 먼지 알러지 때문인 듯하다.
눈앞이 뿌옇게 안개 낀 듯해서 어울리지 않는 나이에 백내장 인가 하고 덜컥하여 안과에 간다. 안구건조증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휴대폰, 컴퓨터 많이 들여다보지 말라는 충고를 듣는다. 회사에서 하루 여덟 시간 모니터만 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저조한 건강상태를 두고 회사 탓을 한다. 회사에서 너무 고생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주말 내내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안될 때는 일단 남 탓이 약이다.
서른 중반이 되어 먹는 영양제가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개인오차 있을 수 있음.) 나뿐만 아니라 가만 보면 회사에 보면 삼십대 이상 중에 안 아픈 사람이 없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크고 작은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 모두가 이런저런 그런 문제를 참고 꿋꿋하게 회사에 출근한다. 눈물겹다. 기억에 남는 몇몇 분이 계시다.
원형탈모 : 40대 중반의 핸섬하신 상사였다. 피부과에서 만났는데 탈모상담이라고 말씀하시던 그 진지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장염 : 가장 흔한 지각의 사유.
요로결석 : 극심한 통증이었다고 말짱한 얼굴로 말씀하신다. 정말 아픈데 금방 낫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갭이 크다.
산업재해 : 창상, 화상, 출퇴근길 교통사고 등 여러 경우를 지켜보았다. 현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관리부는 바로 비상사태다. 빨리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에 다친 직원을 데려간다. 상태 보고 및 가족 연락, 뒤 이은 산재처리 절차 파악 및 전달, 산업재해 조사표 등등 서류 작성. 직원의 치료 경과 수시 체크 까지. 사람이 다치는 건 보통일이 아니다. 한 번 겪고 나면 직원 모두에게 제발 다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고 다니게 된다.
이 모든 아픔의 원인이 회사라고는 볼 수 없다. 주말에라도 휴대폰을 좀 덜 보면 될 텐데 그게 그렇게 안된단다. 짐을 옮기느라 어깨가 아픈데 꼭 주말에 볼링을 친다.
몸이 어디 한 군데만 나빠지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직업병으로 연결되기 쉬운 한 군데만 아팠다가 다음에 전혀 다른 데가 아프다. 신체 부위를 뱅뱅 돌아가며 문제가 생긴다.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둘 때쯤 되면 주말마다 다른 병원에 다니고 있다. 목격담이다.
자신과 맞지 않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일수록 병원 순회가 더 빨리 자주 나타난다. 이직의 필요를 마음이 아닌 몸이 말하는 사람이다.
아픈 사람만 서럽다. 그 아픔이 회사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더 서럽다. 내 몸을 아프게 만드는 회사에 밖에 다닐 수 없어? 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냐는 자책감도 든다. 안 아픈 게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꾸역꾸역 무거운 몸을 끌고 운동하고, 저녁을 적게 먹는다. 건강이 기본이고 기본이 회사생활 보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