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inking cloud Oct 24. 2021
사람이 자주 짓는 표정이 결국 그 사람의 얼굴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 얼굴을 통해 접한다. 입꼬리에 주름이 잡히면 미소를 많이 짓는 사람이구나, 미간에 세로 주름이 있으면 인상을 많이 썼던 사람이구나. 왜 인상을 썼을까. 예민한 사람인가. 안경을 쓴 걸 보니까 시력이 나빠서 찡그렸을 수도 있겠다. 나는 외모 지상주의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성품은 결국 얼굴에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표정을 이용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표정으로 속이거나 감추거나 드러내거나 한다. 웃는 얼굴로 속이는 사람이 있고 화난 얼굴로 속이는 사람이 있다.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고, 잘 쓰냐 잘 못쓰냐의 차이다.
리즈 시절 미모가 수십 년째 회자될 정도로 아주 예쁜 연예인이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얼굴을 보니 미간과 인당 부근의 긴장감이 눈에 띄었다. 텔레비전 속 사람들은 시간이 느리게 간다 생각한 적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시간은 공평하다. 젊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짓더라도 금방 본 얼굴로 돌아온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간밤에 얼굴에 찍힌 배게 자국이 출근하고도 남아있는 걸 보며 안타깝게 실감한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모니터만 상대하는 얼굴은 딱히 표정에 신경을 쓸 일이 없다. 깜빡이는 커서처럼 일정하게 눈꺼풀이 깜빡인다. 대신 눈알은 0과 3과 8을 구분하느라 힘을 주고 있다. 입은 꾹 다물고 있다. 턱이 살짝 빠져야 이완된 상태라던데. 일하는 나는 무표정하게 긴장되어 있는 셈이다. 어쩌다 하품이라도 하면 피부가 땅긴다. 이러다가 무표정하게 긴장된 이 얼굴로 굳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든다.
그럴 때 영화에서 사람 얼굴이 마구 구겨졌다가 몬스터로 변신할 때를 흉내 내어 가만히 있는 얼굴을 마구 구긴다. 눈을 세게 감았다가 뜨고 입을 크게 벌려 턱을 양옆으로 움직인다. 눈을 크게 뜨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할 수 있는 최고의 못난이 표정으로. 한바탕 얼굴을 구기고 나면 열감이 오른다. 얼굴이 운동했다는 기분이다. 얼굴 근육 경직인지 세월인지를 피하고 싶은 몸부림이다.
상사와 미팅할 때는 나름의 표정관리가 필요하다. 그때는 얼굴을 구길 때와는 정반대로 무표정하게 있으려고 애를 쓴다. 경험상 어떤 종류의 이야기가 나와도 무표정으로 받는 것이 가장 무난했다.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사회생활에서는 약점으로 작용하기 쉬웠다.
그렇다. 내가 굳어지는 표정을 걱정한 이유는 감정 때문이었다. 나중에 감정대로 표정이 따라오지 않을까 봐, 표정이 굳어버리면 감정도 굳을까 봐 일부러 얼굴을 구겨가며 저항한 것이다. 쿨해지고 싶지만 기계가 되고 싶지는 않다. 저항한다고 해도 은연중에 내 표정이, 감정이, 생각의 어딘가가 굳어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먹으려고 꺼내 뒀다 잊어버린 떡처럼.
경계할 것인가. 굳은 인간이 되기를 받아들이고 더 견고하게 굳을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