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루틴

by thinking cloud

삼성라이온즈의 박한이 선수를 아시는가. 삼성라이온즈가 왕년에 한칼 했을 때 한 축이 된 선수인데, 지금은 은퇴를 했고, 삼성라이온즈의 타격코치이다. 이 선수에게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중계에 잡히는 특색이 있다. 알 사람 다 알고 본 사람 다 본 ‘타격 루틴'.

박한이 선수가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다. 장갑 찍찍이를 뗐다 붙인다 (양쪽 손 모두). 배트로 바닥을 한 번 긋는다. 모자를 벗어서 이마를 몇 번 긁은 후에 다시 쓴다. 배트를 어깨에 지고 몸을 뒤로 젖혀 스트레칭(?)한다. 이윽고 투수의 공을 기다렸다가 친다. 삼십 초 정도 걸리는 이 장황한 과정을 투수가 공 한 번 던질 때마다 반복한다. 길고 장황하고 한결같아서 야구 좋아하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루틴이라고 중계에서도 참 여러 번 언급되었다. 필자는 '루틴'이라는 말을 이 선수 덕분에 처음 들었다.


루틴 :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 프로그램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이르는 경우에 쓴다.


정보통신 관련 용어라고 한다. 루틴은 야구 한 타석에도 쓰이지만, 직장인의 생활은 루틴 아닐 때가 없다.


0. 눈 뜨면 회사에 가서 일하다 점심 먹고 일하다 퇴근하는 하루의 루틴,

0. 월화수목금(퇼)의 주간 루틴.

0. 매월 1일 전월 매출 마감, 10일 세금계산서 마감, 20일 급여, 말일 공과금 결제가 반복되는 월간 루틴.

0. 부가세 신고가 돌아오는 분기별 루틴.

0. 결산을 하는 연도별 루틴.


멀미 나올 지경으로 모든 일이 루틴 안에서 이루어진다. 마치 태양계 행성들 같다. 공전 주기는 다르지만 태양(회사)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

가끔 이 루틴에 운석처럼 새로운 프로젝트 혹은 사장의 야심 차거나 무모한 계획이 날아든다. 충격은 있지만 루틴은 변하지 않는다. 새로운 일도 어차피 며칠 지나면 루틴화 된다.




루틴은 업종에도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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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회사 : 생산계획 - 자재 구매 - 제조 - 포장 검수 - 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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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회사 : 공사 수주 - 설계 - 건축 허가 - 공사 진행 - 준공


서비스업 : 고객 방문 - 서비스 제공




루틴대로 굴러가다 보면 이 모든 일이 하나의 거대한 프렉탈 도형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여겨진다. 나는 그 안의 작은 프렉탈 한 조각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직을 해도 마찬가지다. 도형의 모양만 바뀌었지 나는 어차피 그 도형의 구성품이다.

프렉탈을 깨고 나간다면 이 지겨운 루틴이 끝날까? 깨고 나갈 수는 있을까?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진다. 아직 태양계의 어떤 행성도 태양 공전을 거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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