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호출을 받았다. 사장실까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이유를 미루어 짐작해야 한다. 생각해봐도 별 거 없었는데 왜 부르지? 불편함을 감추고 사장실 문을 노크한다. 사장님의 얼굴이 진지하다. 왜? 뭔데? 잘못이 있건 없건 이건 불안한 징조다.
- 자네가 노라고 생각하나 사라고 생각하나?
뭐라 굽쇼? 분명 귀에는 다 들어왔다. 노 젓는 노, 죽을 사. 아니 아니, 물론 이 조합의 노와 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지만 사장님이 어떤 답을 원하는 질문인지 몰라 금붕어마냥 입만 벙긋벙긋한다.
노사관계, 노사 대립의 그 노사문제 얘기가 왜 갑자기? 나는 고용된 직원으로서 노동을 제공하고 급여를 받는 근로자가 맞으니 노? 관리직이라는 업무의 성격상 사? 내가 아무말도 못하고 있자 사장은 며칠 전 직원 급여 상의 시를 언급했다. 내가 근로자의 입장에서 발언을 한 것이 문제인 듯했다.
- 너는 이 회사에 고용된 직원이기는 하지만 사의 입장에서 일을 굴려야 할 사람이다.
대표님의 정의는 깔끔했고 나는 더 애매했다. 그래서 노라는 거야 사라는 거야? 면담을 마치고도 한동안 갈피를 못 잡았다. 나는... 뭘까?
뉴스에서 본 것처럼 넥타이가 깁스인 양 목이 빳빳한 아저씨들이 떠올랐다. 그건 내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마에 붉은 띠를 싸매고 있는 쪽도 아니다.
편한 일만 하려 하고 힘든 일 시키면 입이 댓발 나와 있는 직원을 보면 사의 기분이 되고, 급여 결제를 최대한 미뤘다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결제 도장 찍어주는 사장을 보면 노의 기분이 된다. 그러고 보니 확실한 구분 없이 애매한 상태로 양다리를 걸치고 있기는 했구나.
직원 수가 많지 않은 중소기업에서 어디까지가 사이고 어디부터가 노인가. 꼭 구분이 필요한가. 분별심은 갈등의 원인이 될 뿐이지 않겠는가 하는 나의 흐릿함에 선이 그어졌다. 사장의 ‘사’ 선언으로 나는 졸지에 ‘사’로 찍혔다. 하아, 난 거북목인데.
중요한 건 사실 노사 구분도 아니었다. 정말 핵심은 말을 아 다르고 어 다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회사와 근로자가 어떤 사안에 대해 공동으로 부담을 해야 하는 경우 ‘근로자가 전부 부담할 필요는 없다’ 보다는 ‘회사가 전부 부담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반 밖에 안 찼느냐, 반 이나 찼느냐로 말이 많았던 반쯤 물이 든 물컵이 여사(餘事)로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무늬만 ‘사’인 ‘노’의 녹록잖음이 아닐까.
노와 사중에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통제에 있어서는 노가 좀 편할 터다. 사는 노를 통제하지만, 사는 정부, 시장, 세금, 법 기타 등등 사 이외의 모든 것에게 통제를 받으니까.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는 사가 나아 보인다. 노는 쥐꼬리 월급만 바라봐야 하지만 사는 회사를 움직여 발전을 도모할 수 있으니. 선택은 양다리 걸치면서 좀 더 겪어본 뒤로 미루어야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