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회사원이 있다.
한 사람은 목소리가 커서 사무실 내에서 전화통화를 하면 모든 사람이 그 소리를 따라듣는다. 다른 한 사람은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뭔가 말하면 응?이라고 꼭 두 번씩 묻게 만든다. ASMR급이다. 어느 쪽이 나은가.
과함과 부족함의 극단은 어느 것도 좋을 것이 없지만 직장생활을 한다면 일단 내 목소리가 상사보다 커서는 안된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안다.
사장 입장에서는 어떨까. 사장은 목소리 데시벨을 떠나 성실하고 일 잘하고 싹싹하면 좋아한다. 목소리 큰 직원은 큰 직원대로 어디 거래처 가도 안 꿀릴 것 같아서 좋아하고, 작으면 작은 대로 조용조용 일만 하는가 보다 하고 좋아한다.
떠올려 보면, 이때까지 지나왔던 회사의 사장 들 중에 소리통이 작은 사람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목소리는 큰데, 사장의 체면에 따라, 기분이 어떠한가에 따라 볼륨 조절이 있을 뿐이었다.
내 목소리는 어떤가. 작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부러운 것을 보면 큰 편에 속하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들어줬으면 하는 말을 할 때는 사람들이 잘 못 듣는다(안 듣는 건지도). 그래서 더 크게 외치듯 하는 경향이 있다.
목소리가 커진다는 건 그 정도 큰 목소리가 아니면 소통이 안 된다는 반증이다. 동물들이 위협하거나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처럼. 그런 상황을 인지하기 때문에 내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니까. 나는 더 이상의 큰 소리를 낼 목청의 여유도 없고, 내 소리가 귀를 다 잡아먹어 다른 말을 들을 여유도 없다. 그래서 작은 목소리에 든 여유로움이 부럽다.
기차 화통 소리와 개미 소리. 둘 중에 꼭 골라야 한다면 개미를 고르겠다. 기차 화통은 회사 꼰대들의 좋은 먹이다. 한 마디를 더해도 '넌 뭐가 말이 많아'소리를 듣는 건 기차 화통 쪽이지 개미는 아니다.
단, 뭐니 뭐니 해도 최고는 말이 없는 것이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만 내뱉는 능력. 갖추기가 참 어렵기 때문에 ‘능력’이다. 몇 번 말실수를 하다가 차라리 말을 말자하는 시기가 온다. 생존 본능이 내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선택적 함구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묵언수행으로 생각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다.
현장 직원분이 용무가 있어 사무실에 들를 때면 말하곤 한다. 사무실은 조용하네요. 현장은 시끄럽고 바쁘게 돌아가는데 사무실 너희는 조용히 앉아서 팽팽 노는 거 아니냐고 비꼬는 말이다. 자물쇠 걸린 입안에서 이 말이 웅얼거린다. 사무실은 고요하게 치열하고 바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