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는 어느 물에나 산다

by thinking cloud

나는 미꾸라지. 도랑이나 연못에 산다. 웬만큼 물이 더러워도 살고, 추울 때는 진흙을 파고들어 그 안에서도 살 수 있다. 어떤 조건에도 꿋꿋하게 살아남는다. 생존하는데 환경 탓을 하는 건 생의 경험이 좁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저기 저 일급수에서만 사는 까탈쟁이들을 보면 비웃음이 나온다. 언제까지 세상이 너한테 맞출 수 있을 것 같냐? 하루가 다르게 오염되고 있는 마당에.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일급수 까탈쟁이가 많이 사라졌고, 천연기념물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 물마다 잘난척하는 일급수들이 있다. 미꾸라지가 저를 한심하게 여기는지도 모르고.


어느 날 내가 사는 도랑에 모르던 물고기가 들어왔는데 자기가 일급수에서 살다왔다고 자랑을 했다. 처음에는 흥미가 있었다.

-일급수 물은 어때? 내장까지 씻어낼 정도로 깨끗하다던데 사실이야?

일급수가 대답했다.

-물 흐리지 말고 저리 가줄래? 콜록콜록. 뭐 이런 수질오염 같은 물고기가 다 있어?


나는 충격을 받고 멍하게 있다가 기가 죽어 조용히 진흙을 파고들었다. 멀찍이 뒤에서 일급수의 말이 들렸다. 역시 미꾸라지. 빠져나가는 솜씨가 굉장하군.

깜깜한 가운데 진흙의 유기물을 먹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내가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데. 수천수만 개의 알에서 깨어났더니 먹을 거라고는 모기 유충 밖에 없고, 그거라도 꾸역꾸역 먹으면서 크는데 같이 태어난 형제들은 다른 물고기한테 잡아먹혀 다 사라지고. 성체가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니가 알아? 심지어 지금도 흙 파먹고 있는데.

며칠을 두문불출하고 있었는데 친구 미꾸라지가 다가왔다. 이제 나와도 된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친구 미꾸라지를 따라 도랑으로 나갔다. 내게 모욕을 준 일급수는 거기에 없었다. 친구 미꾸라지가 말했다.

- 사실은 그 물고기가 미꾸라지였어.


내가 진흙에 들어온 뒤에도 일급수는 까탈스러운 성정으로 주변의 물고기를 면박 주고 떠밀었다. 그러면서 다른 물고기가 잡은 먹이를 가로챘다. 일급수도 배는 고팠고, 먹는 걸로는 급수 타령을 안 했던 모양이다. 그런 상황을 못 견딘 도랑의 물고기들이 모였다.

- 저 일급수 자식, 혼자 일도 안 하고 왜 저러지?

- 왜 남이 일해서 잡은 고기에 숟가락을 얹어?

- 자기 잘났다고 자랑하는데 잘난 건 주둥이 밖에 없는 것 같아.

- 저 자식이 진정한 미꾸라지 아니야?

- 그래. 맞아! 맞아!

- 쫓아내자!


그렇게 일급수는 진정한 미꾸라지가 되어 쫓겨났다. 일급수에 남아있지 못해 삼급수로 왔다면 삼급수의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맞추는 자가 버틴다. 버티는 놈이 이긴다. 나는 진흙을 파먹으면서 버텼고, 일급수는 그러지 못했다. 쫓겨난 그 물고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 정도는 궁금했지만 내 코가 석자라 곧 잊어버렸다.




중소기업이라는 작은 도랑은 진정한 미꾸라지 한 마리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진정한 미꾸라지를 알아보는 것도 대표가 갖추어야 할 능력이다. 그리고 나는 회사라는 도랑의 미꾸라지로서 진정한 미꾸라지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진단한다. 가끔 숨 막히도록 물이 흐린 날도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미꾸라지 정도는 되어야 버틴다는 생각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잔인한 연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