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해온 시간, 그리고 기록

by 이신우

남성들의 세계,

경마계에서 여성으로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보면 “쉽지 않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수없이 견뎌야 했고,

수없이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고,

조용히 무너졌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일어서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 자리에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시간은 충분히 오래고, 충분히 무겁고,

충분히 의미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의미를 찾으라고,

목표를 세우라고.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몸으로 배운 건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길게, 오래 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대단한 의미나 거창한 목표보다

‘그냥 하는 힘’이었다.


‘그냥 한다’는 말은

듣기엔 참 단순하고 가볍다.

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그 말처럼 무거운 말도 드물다.

보상도 없고,

확신도 없고,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도 없는 날에도

다시 신발을 신고,

다시 같은 길을 걷고,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가는 일.


그것이 바로

내가 수없이 반복해온

‘그냥 하는 하루’였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대부분의 날들에는

그저 조용한 선택에 가깝다는 것도

나는 이 길에서 배웠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서.

흩어지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쉽게 나태해질 수 있는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

그리고 무너져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나만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록한다.


기록은 나를 멋지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완전히 무너지게 두지는 않는다.

나를 다시 나에게로 데려오는

가장 조용한 장치가 되어준다.


완벽하면 물론 좋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완벽한 삶이 아닌

각자의 결로 살아간다.

오늘 하나를 해내고,

오늘 하나를 버티고,

오늘 하나를 완성하는 식으로.


크고 대단하지 않아도,

사소하고 느려 보여도

그렇게 하나씩 완성해 나가는 삶 역시

나는 충분히 아름답다고 믿는다.

수많은 삶의 색깔 중에서

아주 은은하지만 오래 남는 색처럼 말이다.


나는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아마 앞으로도 완벽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그냥 한다.

그리고 그 하루를 기록한다.


그 방식으로

나는 여기까지 왔고,

그 방식으로

아마 앞으로도

조금 느리지만,

조금 단단하게

내 삶을 더 멀리 데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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