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즈음이면 어김없이 브라운관을 채우던 만화영화가 있었다. 국민적 사랑을 받던 ‘아기공룡 둘리’도 있었지만, 내 마음속 가장 깊은 자리를 차지한 작품은 언제나 ‘머털도사’였다. 어린 눈에도 그 이야기는 단순한 선악의 구도를 넘어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느낌을 주곤 했다. 이제와 돌아보면, 머털도사는 내게 하나의 추억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를 만든 뿌리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품 속 두 스승, 누덕도사와 왕질악 도사는 극명하게 다른 방식으로 제자를 길러낸다. 왕질악 도사는 눈앞의 성과를 약속하는 화려한 도술을 꺽꿀이에게 전한다. 반면 누덕도사는 머털이에게 도술이 아닌 허드렛일을 맡기며, 그저 머리카락을 세우는 훈련만 시키는 듯 보인다. 당장은 의미 없어 보이지만, 가장 근원적인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었다.
수련 초기에 둘이 맞붙었다면 머털이는 분명 초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에서 다른 진실을 드러낸다.
“화려함의 앞자리에는 언제나 그걸 지탱할 마음이 서 있어야 한다.”
머리카락을 세우는 반복은 단순한 기합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기를 모으는 기반이었다.
요행이 쌓은 속도는 기본이 축적한 시간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실에서도 이 진리는 다르지 않다.
나는 경주마 조교사로 살아가며, 처음에는 기수가 되기 위해 말타는 기술을 익혔다. 재갈과 고삐의 감각을 제대로 잡지 못해 스스로를 탓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반복을 이어가자 어느 순간 말 위에서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었다. 기본과 시간이 만들어낸 변화였다.
지금 배우는 검도도 그렇다. 발구름과 손목의 각도가 아직은 낯설지만, 꾸준한 수련 속에서 언젠가 몸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미숙하게 시작한 사진도 마찬가지다. 구도가 마음처럼 잡히지 않아도 촬영을 거듭할수록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싶은지 조금씩 드러난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깨달음은 말타는 기술이나 검도, 사진이라는 특정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진짜 실력은 스며드는 시간 속에서 자란다.
빠른 성과보다 기본을 다지는 반복이, 조급함보다 꾸준함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더딘 시간을 견딘다.
요행을 기대하지 않고, 머털이가 묵묵히 머리카락을 세우던 그날들처럼 나아간다.
아직은 시작 단계에 서 있지만, 말타는 기술이 어느 날 내 몸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던 것처럼 새로운 기술들 역시 내 안에 자리 잡을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오롯이 나만의 성취가 꽃피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향해 나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간다.
끈기와 인내가 결국 시간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